원주 캠프롱
기록은 동경이 아니라, 실존을 증명하는 투쟁이다
곤돌라 문이 닫힌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강이 아래로 내려간다. 유리에 내 얼굴이 겹친다.
작은 흔들림인데 몸이 먼저 반응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강은 맑다. 투명하게 보인다. 그 아래, 검은 층이 가라앉아 있다.
탱크 한 대가 멈춰 있다. 붉은 글씨. 지뢰. 짧다. 그래서 더 무겁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발이 낯선 기슭에 닿는다.
캠프 그리브스. 녹슨 철, 퀀셋 막사의 둥근 곡선, 낮게 달린 창문들. 임시처럼 생겼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세련되게 다듬지 않았기에 느껴지는 서늘한 긴장감.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내가 사는 도시, 원주의 캠프 롱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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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버리는 것과 남겨두는 것**
원주 캠프 롱은 지금 대대적인 공사가 한창이다. 총 1,290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 60년간 시민을 밀어냈던 땅엔 곧 분수가 솟고, 캐스케이드 물길이 생기며, 매끈한 잔디가 깔릴 것이다.
60년의 억압을 보상받고 싶은 원주 시민으로서, 이 변신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설계도를 보며 나는 자꾸 멈춰 선다. 새로 깔린 잔디가 모든 흔적을 덮어버리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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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동경이 아니라 직시(直視)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 불편한 군사 시설을 굳이 기록하려 하느냐고.
그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도, 그들의 문화에 대한 동경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기록하려는 것은 그곳에 머물렀던 권력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그 권력이 이 땅에 남긴 흉터 그 자체다.
덮어버리는 것은 치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망각의 강요에 가깝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지 증명할 대조군이 사라진 자리에 세워진 공원은, 정체성 없는 여느 도심 녹지와 다를 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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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작별하기 위하여**
노이즈 섞인 거친 필름 사진이 매끈하게 보정된 이미지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안에 시간의 마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기록의 목적은 감상이 아니라 전달이다. 그 땅이 품었던 차가운 긴장감을 있는 그대로 남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땅을 진정으로 되찾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
분수가 솟구치기 전, 우리는 그곳에 실존했던 콘크리트의 감촉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무엇이 있었는지 정확히 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흉터를 남겼는지 기록한 뒤에야 — 우리는 비로소 그 땅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다.
기록은 동경이 아니다.
우리가 이곳에 존재했음을, 그리고 이제는 주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치열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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