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기억의 외주화, 우리는 무엇을 상실하고 있는가

Looki L1

by 마루

[비평] 기억의 외주화, 우리는 무엇을 상실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제 기억조차 기계에 ‘백업’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슴팍에 달린 30g짜리 작은 렌즈는 5분마다 나의 시선을 기계적으로 채집한다.

업체는 이를 ‘기억의 저장’이라 명명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데이터의 박제’일 뿐이다.

인간이 수행해야 할 사유와 망각의 과정을 기계에 의임했을 때, 과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망각이라는 축복의 거부

인간의 뇌가 완벽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생존을 위한 최적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흐릿하게 만들고, 소중한 순간만을 선별하여 주관적인 서사로 재구성한다. 이 '망각'과 '왜곡'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필터다.

하지만 Looki L1과 같은 장치는 이 필터를 거부한다. AI는 나의 하루를 기계적 간격으로 잘라내어 만화 칸 속에 집어넣는다.

내가 잊기로 선택한 비루한 순간들, 혹은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공백까지도 강제로 보존된다. 기억의 주권을 기계에 넘겨준 순간, 우리는 자신의 삶을 편집할 권리를 상실한다.

저장하는 행위와 기억하는 행위의 혼동

많은 이들이 '저장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뇌는 안도하며 그 장면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기를 멈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기계가 24시간 나를 대신해 보고 있다면, 나의 뇌는 더 이상 눈앞의 실재를 치열하게 관찰할 필요가 없어진다.

"나중에 다시 보면 되지"라는 안일함은 현존(Presence)의 상실을 야기한다.

렌즈는 빛을 기록하지만, 그 순간의 공기와 내가 느꼈던 전율까지 담지는 못한다.

기계에 의존한 기억은 차가운 로그 기록일 뿐, 뜨거운 생의 감각이 아니다.

데이터가 된 자아, 웹툰으로 소비되는 삶

나의 하루가 AI에 의해 웹툰으로 요약되어 돌아오는 장면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나의 삶이 알고리즘이 짜놓은 칸과 말풍선 속에 갇히는 순간,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콘텐츠'의 소재로 전락한다.

AI가 골라준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정말 나의 진심과 닿아 있는가?

우리는 점점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기계가 요약해 준 ‘나의 모습’을 정답으로 믿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성찰이 아니라 소비다.


맺으며: 기계의 눈은 마음을 대신할 수 없다

기억을 기계에 의존하는 것은 편리하다. 하지만 편리함의 대가는 늘 '능력의 퇴화'였다. 기록의 범람 속에서 정작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진정한 기억은 데이터의 총합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른 뒤 마음속에 남은 희미한 잔상이며, 때로는 틀리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장이다. 32GB의 내장 메모리가 나의 뇌를 대신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계는 순간을 박제할 순 있어도, 그 순간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독자님 생각하시는 '기록의 본질'과 이 비평적 시각이 일치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마루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이렇게 AI로 블로그 하시면 좋으십니까?" 새벽 다섯 시 사십일 분에 달린 댓글이다. 나는 그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볼수록 좋아졌다. 화두는 원래 그렇게 온다. 모르는 사람이

42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6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7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