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만남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소보다 느렸다. 머리 위로 다시 눈송이 몇 개가 내려왔다.
프롤로그
눈이 그쳤다. 그러나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하늘은 잿빛으로 내려앉았고,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따라 천천히 흔들렸다.
어디에선가 쌓인 눈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전선 위에 걸린 눈송이 몇 조각이 아직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 아래로, 사람 없는 공원이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박정우는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바람 사이로 아주 얇은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바람결이 비명을 흉내 내는 줄 알았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반복된 소리는 분명한 울음이었다. 꺼내지 못한 목소리처럼 가늘고, 떨리는 소리.
그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회색 벤치 옆, 바람에 휘청이는 나뭇가지 아래, 작은 갈색 덩어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강아지였다.
젖은 털이 군데군데 얼어붙어 있었고, 가느다란 다리 사이로 빠르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작은 몸은 흙과 눈 사이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박정우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걸음을 옮길 이유도, 머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서서 그 작은 생명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깊이까지 스며들었다. 오히려 고요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그제야 조금씩 되살아났다.
천천히, 그는 허리를 숙였다.
손을 내밀자 강아지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 속에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도망치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몸이 식어버려서인지, 아니면 도망쳐야 할 이유마저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춥지.”
그가 조용히 말했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혹은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생긴 메아리처럼.
그 말에 어떤 온기가 있었다. 허공에 머물다 스러지는 숨 같은 말.
그는 외투 지퍼를 열었다. 손으로 조심스레 강아지를 들어올렸다.
작고 젖은 몸이 팔 안에 안겼다. 따뜻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바닥보다는 나았다. 바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강아지는 아주 미약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짧은 숨을 내쉬었다. 작고, 희미하게. 꼭 한숨처럼.
집으로 향하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발밑에서 눈이 뭉개지는 소리가 리듬 없이 이어졌다.
어깨 위로 다시 눈송이 몇 개가 내려왔다. 아무런 예고 없이.
집 안은 희미하게 따뜻했다.
문을 닫는 순간, 바깥의 겨울바람이 완전히 끊기진 않았지만, 그 차가움이 벽 너머로 밀려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보일러가 낮게 울리며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박정우는 천천히 외투의 지퍼를 내리고, 조심스럽게 품 속에 감싸 안았던 갈색의 작은 생명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젖은 털에서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 장판 위에 닿았다.
작은 발은 낯선 바닥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손끝으로 현관문을 다 닫고 나서야, 강아지는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리 오렴."
그가 부드럽게 불렀다. 낮은,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였다.
강아지는 그 소리를 이해한 듯 한걸음 다가왔고, 다시 멈췄다.
박정우는 부엌으로 향했다.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고,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받으며 세숫대야를 꺼냈다.
수건 두 장을 꺼내 접었다. 구석에 밀려 있던 작은 샴푸통 하나를 집었다.
반쯤 남아 있던 용기. 라벤더 향이 아주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쓰던 것이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강아지는 같은 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동그랗게 떠져 있었지만, 두려움보다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더 가까운 감정 같았다.
그는 한순간 멈칫했고, 이내 다가가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세숫대야에 작은 몸을 천천히 담갔다.
발이 따뜻한 물에 닿자 강아지가 움찔했지만, 금세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그 온기를 기억하려는 듯,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추울 거야. 금방 끝내자.”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은 위로였다. 강아지를 위한 동시에,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손끝으로 털을 문질렀다.
엉겨붙은 진흙과 먼지가 조금씩 벗겨지며 물속에 녹았다.
조심스럽게, 마치 아주 연약한 무언가를 다루듯 움직였다.
곧 피부 위로 작은 상처들이 드러났다.
긁힌 자국, 마른 핏자국, 오래된 멍.
그의 손길은 점점 느려졌고, 깊은 숨이 안으로 가라앉았다.
“이렇게 된 지, 오래됐구나…”
그는 물을 갈아 헹구고,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감쌌다.
수건은 물기를 빨아들이며 점점 무거워졌다.
두 손에 든 무게는 크지 않았지만, 그 따뜻함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이젠 밥을 먹어야겠지.”
부엌으로 돌아가 냉장고를 열었다.
닭가슴살이 있었다.
자신을 위해 준비해뒀던 저녁이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 잘게 찢었다. 손끝으로 찢긴 고기에서 김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강아지는 수건에 둘러싸인 채로도 냄새를 맡고 코를 살짝 씰룩거렸다.
그가 조용히 웃었다.
“이거라도 먹어봐.”
닭고기가 담긴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자, 강아지는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리고 머뭇거리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그러나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몸짓이었다.
한 점, 또 한 점. 씹지 않고 삼켰고, 그 사이사이에 숨을 골랐다.
박정우는 식탁 의자에 앉아 손을 깍지 낀 채 무릎 위에 올렸다.
그저, 바라보았다.
마치 그 생명이 음식을 먹는 순간이 이 집 안에 처음으로 다시 들어온 따뜻함처럼 느껴졌다.
식사가 끝나자, 강아지는 수건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작은 몸이 다시 웅크려졌고,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갔다.
마치, 아주 오래 기다려온 휴식이 눈꺼풀의 무게를 데려온 듯이.
주방의 벽시계가 작게 째깍거렸다.
초침 소리가 고요를 하나씩 깨어내며 방 안에 퍼졌다.
박정우는 고개를 돌려, 거실 선반 위에 놓인 액자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사진.
사진 속의 여자는 여전히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스탠드의 노란 불빛이 액자 유리 위에서 아주 작게 떨렸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커피잔을 문지르듯 매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 어떡하지.”
혼잣말은 방 안에 머물렀다가, 서서히 고요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시선이 사진 옆의 서랍 위로 옮겨갔다.
오래된 손전등 하나가 거기 있었다.
아내가 밤마다 켜던 작은 불빛.
함께 책을 읽던 기억, 조용한 웃음소리.
아내는 늘 말했다.
“초롱이 켜야지.”
그는 그 말을 떠올리며 손전등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그 손전등을 ‘초롱이’라고 불렀었다.
불빛 하나에도 이름을 붙이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박정우는 이불 속에서 잠든 작은 생명을 바라보았다.
손끝으로 강아지의 젖은 귀를 살며시 쓸어내렸다.
“…그래. 네 이름은 초롱이다.”
그 순간, 강아지가 몸을 조금 움직였다.
그의 손등 위에 아주 작고, 미세한 체온이 얹혔다.
마치 그 말이 무언가를 전해준 듯이.
그 온기는 손끝에 오래 남았다.
아무 말 없이,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밤은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다.
창틀이 바람에 간헐적으로 떨렸고, 창밖 나뭇가지들은 누군가 가만히 흔드는 것처럼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는 없었다. 모든 소리가 방 안에서 멀어졌다.
박정우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반쯤 비워진 찻잔이 있었다.
언제 식었는지 모른다. 따뜻했던 기억만 남아 있었다.
그는 손끝으로 찻잔의 손잡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그 안에 감춰진 무언가를 더듬듯이.
바닥 한켠, 수건을 덮은 작은 털뭉치가 웅크려 있었다.
초롱이는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숨결이 오르내릴 때마다 가슴께가 아주 작게 들썩였고, 그 미세한 움직임조차 방 안의 고요를 더 짙게 만들었다.
박정우는 눈을 내리깔고 깊은 숨을 삼켰다.
‘이대로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더 오래, 그 말이 마음속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돈’이었다.
병원비, 사료값, 약값, 목욕비, 예방접종, 예기치 않은 모든 비용들.
냉동고 안에 남은 반찬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미리 해 두었던 것들.
그는 그것으로 끼니를 이었다.
작은 연금으로는 전기세와 가스비조차 빠듯했다. 저축은 이미 거의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일 아침, 구청 보호소에 데려가자.’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마음속에 결론을 그렸다.
이건 어쩌면 최선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아이에게도 그게 더 안전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 생각은 이내 아래로부터 밀려오는 감정에 휩쓸렸다.
자리를 이탈한 고요한 슬픔 같은 것이, 천천히 심장을 조여 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어머니가 떠난 날.
좁은 반지하방.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간 어머니의 뒷모습.
닫히는 문 너머 들리지 않던 발걸음.
미지근한 김이 아직 남아 있던 식탁 위의 국그릇.
그는 그 안에서 아무 소리 없이 남겨졌었다.
그때의 바닥 냄새.
곰팡이 냄새와 습기.
그것이 지금 방 안 공기 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기억은 오래전 일임에도 살아 있는 냄새로 되살아났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얹었다.
손이 떨려 손등 위에 다른 손을 덮었고, 그마저도 식어갔다.
입술 끝에서 속삭이듯 생각이 흘렀다.
‘나도, 버려졌었는데…’
아주 짧은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문장이 가슴속 어디를 깊이 건드렸다.
그는 다시 초롱이를 바라보았다.
수건에 덮인 작은 몸.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명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숨소리는, 오래전 자신의 것과 닮아 있었다.
‘그때 나도 저렇게, 웅크리고 있었겠지…’
그러나 또 다른 목소리가 귓가에서 속삭였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너는 늙었고, 아프고, 힘이 없다고.
초롱이를 오래 책임질 수 없을 거라고.
네가 쓰러지면, 이 아이는 길 위에 더 거칠게 내던져질 수도 있다고.
그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점점 또렷해졌다.
그리고 끝내 이성의 언어로 바뀌었다.
그는 얼굴을 두 손으로 덮었다.
손바닥 틈 사이로 길고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조용하고 무거운 한숨이었다.
그 안에는 자책과 회피, 그리고 어쩔 수 없음이 섞여 있었다.
‘이기적이다.’
속으로 내뱉은 말이 천천히 그를 죄였다.
초롱이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다.
그저 작고 따뜻한 몸으로, 아주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그 시간이, 이 아이보다 먼저 끝날 수 있다는 걸.
“보호소로 보내야 해…”
마침내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
공기 속에 오래 머물렀다.
무게감 있는 침묵처럼.
상처처럼 아픈 소리였다.
“이게 최선이야. 어쩔 수 없어…”
말끝은 흐릿해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초롱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작은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마치 아주 오래 전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자신의 숨소리처럼.
낡은 기억이 현재의 공기와 포개졌다.
그는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명을 하나씩 끄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몸을 눕혔지만 눈은 쉽게 감기지 않았다.
가슴이, 이불 속에서 조용히 떨렸다.
춥지도 않았지만 떨렸다.
잠시 후, 그는 일어나 초롱이를 안아 침대로 데려왔다.
작은 몸을 가슴에 안았다.
그제야 온기가 몸 안으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초롱이는 잠든 듯했다.
숨소리가 잔잔했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전, 누군가 불러주던 자장가처럼 들렸다.
잊힌 것들이 조용히 되살아나는 밤이었다.
아침 햇빛이 커튼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희미하고 부드러운 빛이었다.
그 빛은 바닥 위에 엷은 그림자를 만들며 조용히 방 안을 더듬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주전자 안의 물이 끓고 있었다.
김이 이따금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뚜껑을 흔들었고, 그 소리는 방 안의 적막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창문 너머로는 하얀 눈이 얇게 깔려 있었다.
밤새 조용히 내렸던 눈은 새벽의 찬 공기를 품은 채, 아직도 깨끗하게 남아 있었다.
햇살은 그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박정우는 커튼을 젖혔다.
손끝에 닿은 천의 감촉이 이상하게 차갑고 부드러웠다.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는 눈을 내렸다.
그 아래, 조용히 깨어난 생명이 있었다.
초롱이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작은 몸이 수건 안에서 꿈틀거리며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초롱이는 어제보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분명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소리 없는 인사. 살아 있다는 작은 기척.
“일어났구나.”
그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은 어쩌면 초롱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인사처럼 들렸다.
초롱이는 짧은 숨소리를 내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작은 발이 그의 발등을 스쳤고, 그 위에 잠시 머물렀다.
머리를 그의 무릎에 기대더니, 이내 두 앞발을 들고 천천히 그의 품으로 올라왔다.
작은 몸이 안기듯 기대왔다.
따뜻했다.
무게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가벼운 체온이 그의 가슴께를 조용히 두드렸다.
초롱이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다시 숨을 골랐다.
짧은 숨결이 그의 팔을 따라 퍼졌다.
그 숨결이 너무도 작고,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 것 같았다.
박정우는 초롱이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은 채로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방 안은 온기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여전히 거기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연금 수첩과 병원 진료비 영수증이 펼쳐져 있었다.
굵은 글씨로 인쇄된 숫자들이 묵묵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숫자들은 시야 밖에서도 선명했다.
그는 낮게 숨을 토해냈다.
가슴 안 깊은 곳에서, 무겁고 묵직한 문장이 조용히 떠올랐다.
‘며칠만 더…’
며칠만 더 함께 있어보자고,
이 따뜻한 체온과 조금만 더 머물다가,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고.
결정을 미루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붙잡는 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알고 있었다.
‘정든 다음에 보내면 더 아프다.
그게 오히려 이 아이에겐 더 나쁠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은 자꾸만 조용한 목소리로 되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초롱이는 그의 품에서 몸을 말고, 눈을 감고 있었다.
짧고 규칙적인 숨결이 그의 옷깃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온기가 가슴께에서 천천히 번졌다.
박정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한 채, 그 경계에서 멈춰선 자신을 자각했다.
이 선택이 이기적인 건 아닐까.
아니면 지나치게 감정적인 건 아닐까.
무엇이 진짜 책임이고, 무엇이 도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내일… 내일 구청에 한번 가보자.
아직은 그게… 이 아이에게 덜 나쁜 길일지도 모르니까.’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결정을 유예하면서 안도했다.
그러나 그도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작은 온기를 가슴에서 떼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어려워질 거라는 것을.
그는 그것을 어렴풋하게 아니, 아주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
초롱이는 여전히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숨결이, 마치 “지금은 괜찮아”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박정우는 아무 말 없이 그 온기를 조심스레 품에 끌어안았다.
햇살은 창문을 지나 바닥에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