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없이도 구원받는 법.2장
애굽이 있었다.
애굽은 먼 옛날의 나라가 아니라,
오늘의 도시였다.
애굽은 피라미드 대신 빌딩을 세웠고,
채찍 대신 알림을 들었고,
노예 대신 “직장인”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 단어는 참 친절해서,
사람을 노예로 부르지 않게 해준다.
다만 노예처럼 살게 할 뿐이다.
그리고 애굽에는 왕이 있었다.
왕의 이름은 바로였다.
바로는 얼굴이 없었다.
왕좌에 앉아 있지도 않았다.
그는 늘 어디에나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왕의 목소리처럼 크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작고, 정중하고,
심지어는 “도움이 되는 안내”처럼 들렸다.
“신용등급이 변경되었습니다.”
“한도가 조정되었습니다.”
“연체가 발생했습니다.”
“이용내역을 확인하세요.”
바로는 이렇게 통치했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말끝을 올리지 않고,
대신 숫자를 내렸다.
숫자가 내려갈 때
사람의 어깨도 함께 내려갔다.
숫자가 오를 때
사람의 자존감도 함께 올랐다.
사람들은 그것을 공정이라고 불렀다.
공정은 숫자의 옷을 입으면
의심받지 않는 신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애굽의 백성들은 벽돌을 만들었다.
벽돌은 진흙이 아니라,
월급이었다.
성과였고, 실적이었고, 납부였고, 갚음이었다.
벽돌은 매달 굳어졌다.
월말이 되면 벽돌이 굳고,
월초가 되면 벽돌이 다시 필요했다.
애굽은 똑같은 달력을 매년 반복해서
사람들의 생을 조용히 제단 위에 올렸다.
바로가 말했다.
“너희는 벽돌을 더 만들라.”
“그러나 쉬지는 말라.”
“쉬면 너희는 불안해질 것이고,
불안해지면 너희는 더 많은 빛을 원할 것이며,
빛을 원하면 너희는 나를 더 자주 찾게 되리라.”
사람들은 이 말을 율법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을 “현실”이라 불렀다.
현실은 율법보다 더 강하다.
율법은 어기면 죄책감이 오지만,
현실은 어기면 바로 손해가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쉬지 않았다.
쉬는 날에도 쉬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았다.
잠을 자면서도 쉬지 않았다.
마음은 계속 계산했다.
“이번 달에 남는 게 있나?”
“다음 달에 버틸 수 있나?”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만약이라는 말이 애굽의 공기였다.
만약은 우리에게 산소처럼 필요했다.
만약이 없으면 우리는 안도할 텐데,
안도하면 바로가 통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는 백성들에게 짐을 지웠다.
짐은 보이지 않았다.
짐은 철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매달 이만큼 갚겠습니다.”
“이만큼 벌겠습니다.”
“이만큼 유지하겠습니다.”
“이만큼… 증명하겠습니다.”
약속은 종이에 쓰이지만,
가장 먼저 가슴에 새겨진다.
사람들은 그 약속 때문에 웃었고,
그 약속 때문에 울었고,
그 약속 때문에 사람을 사랑할 시간도
사랑할 마음도
조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바로의 통치는 완벽했다.
왜냐하면 바로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지 않고도
사람이 스스로 감옥을 들고 다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감옥의 이름은
“내가 이 정도는 해야 한다”였다.
문은 없었다.
자물쇠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계속 그 안에서 살았다.
그때, 백성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우린 노예가 아니야.”
“우린 선택해서 이 일을 하는 거야.”
“우린 자유로운 거야.”
그 말은 애굽에서 흔한 기도문이었다.
자유를 말해야
노예가 아닌 척할 수 있으니까.
노예가 아닌 척해야
오늘도 출근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바로는 알고 있었다.
백성들도 얇게 알고 있었다.
자유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늘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애굽의 자유는 정반대였다.
할 수 있는 것은 늘었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같이 늘었다.
바로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더 많이 만들라.”
“그러면 너희는 안전하리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많이 만들었다.
벽돌을.
월급을.
시간을.
자기 자신을.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