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힐까?

경험은 동일한 대상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

by 나원

『어린 왕자』를 생애 처음 읽은 건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고 2학년 진급 직전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어린 왕자』책을 수십 권 들고 와서 우리 반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삼사십 대가량의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내 생에 가장 첫 번째 담임 선생님이라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 때 나는 『어린 왕자』를 우정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소년의 이야기 정도로 읽었던 것 같다. 만남을 반기던, 이별의 의미는 몰랐던 어린아이 치고는 상당히 잘 읽은 듯하다.





선생님은 책의 마지막장에 학급 친구들 모두에게 짤막한 편지를 남겨 주시곤 했다. 나에게는, 환한 미소가 너무 예쁘니 그 미소를 잃지 않는 예쁜 숙녀로 자라 달라고. 음, 절반은 성공한 것 같아요. 선생님.






『어린 왕자』는 10대, 20대, 30대, 40대…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고 알려져 있다. 이미 현생의 사람이 아닌 생텍쥐페리가 10년에 한 번씩 동일 제목으로 새로 글을 출판하는 건 아닐 테고, 왜 많은 이들이 『어린 왕자』는 볼 때마다 달리 해석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글일수록 훌륭한 작품이라는 그런 논의는 차치하겠다. 직관적으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그 경험에 대한 예시로, 우리는 동화 속 나라 같은 놀이공원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에는 국내 최고의 스릴을 자랑하는 놀이기구 하나가 있다.



탑승 전 손에서 진땀이 난다. 이런 내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놀이기구는 매정하게 출발해 버린다. 아무리 길어도 5분이 채 안 되는 이 놀이기구를 타는 동안 머리가 새하얘진다. 저기 아까의 그 출발점이 보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5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곳에 놓여 있다. 하지만 5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놀이기구'에 대한 감정/마음/생각이 같다 볼 수 있는가?





답은 너무나도 뻔하다. 단 5분의 시간도 한 사물에 대한 사고를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 짧은 시간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기나긴 삶 속의 경험을 『어린 왕자』에 투영한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더라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경험은 책을 읽는 시각에서 더 나아가, 나의 삶에도 더 많은 변화를 부른다. 보이고 읽히고 말하고 쓰이는 것들 모두. 내가 맞이할 결과도, 나의 생각도, 내 시선도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그 변화가 당장은 나에게 후회나 괴로움으로 다가올지라도…







선생님이 『어린 왕자』를 우리들에게 한 권 한 권 건네 주셨을 때의 미소가 어쩐지 '어린왕자'의 미소와도 닮은 것 같다. 선생님의 그 때 그 미소의 의미도, 많고 많은 명작 중 『어린 왕자』를 한 권 한 권 어린 아이들에게 건네준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어느새 내 나이가 그때의 선생님 나이에 가까워져 간다. '어린 왕자'처럼 여러 경험을 여행하며 이별을 맞이하기도 했고, 미소를 잃어가기도 했다. 어린왕자는 행성 하나씩 떠날 때마다 무언가를 깨달아 갔다. 그의 시간도 나의 시간도 계속해서 흘렀고, 이별은 늘 새로운 만남을 불러 왔다. 그러면서 삶에 대응하는 방법 중 하나가 웃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비록 만남만 알던 오래 전 그 때와는 다른 웃음이지만.





내 미소가 더 이상 과거만큼 해맑지는 않더라도, 이별과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웃을 수 있는 힘은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어린왕자'도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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