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교사가 되고 싶었을까

스승의 그림자

by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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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한때는 선생님을 부모보다 높이 여기고, 그 권위를 존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교권 침해로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한 분의 선생님을 떠올린다.


나는 시골의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수로 일하며 전국을 떠돌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실 때마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맨날 적자야.”
그 말은 아버지의 습관이었다.
벌어온 돈은 술과 노름으로 사라졌고, 가족은 늘 가난했다.


엄마는 밭을 일구며 일곱 남매를 먹여 살리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보리고개가 오면 먹을 것이 떨어져 이웃집을 찾아 빌리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 굴욕감이 깊게 남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교과서조차 살 수 없었다.
교과서 없이 공부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통지표에 적으셨다.
“무기 없는 군인과 같다.
크레파스는 꿈도 꾸지 못했다.
친구의 크레파스를 빌려 쓰며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엄마에게 졸라도 소용없었다. 그것은 사치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은 노금돈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내 형편을 아시고 교과서와 전과를 사주셨다.
그 책들은 단순한 학용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호롱불 아래에서 복습과 예습을 했다.
낡은 책장을 넘기며 다짐했다.
‘나도 선생님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국 우등상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마음속에 싹튼 꿈이었다.
‘교사’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교대 진학은 불가능했다.
나는 일찍 결혼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마음속 배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자식들이 다 자란 뒤,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마산대 국제소믈리에과를 시작으로 경영학, 아동학, 사회복지학까지 배웠다.

가족들은 웃으며 물었다.
“그걸 다 언제 써먹으려고 그래?”
나도 몰랐다. 다만 배우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그렇게 쌓인 배움은 어느새 내 인생의 자산이 되어 있었다.


지금 나는 자연치유를 공부하며 힐링캠프에서 강의하고 있다.
강의 자료를 준비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꿈이, 비록 다른 모습이지만 지금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서, 그들에게 배움과 깨달음을 나누고 있었다.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회복하는 법을 전한다.
또한 온라인 수익화에도 도전하고 있다.
놀라운 건, 그동안 배운 모든 것이 지금 내 삶 속에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믈리에부터 사회복지학까지, 모든 배움이 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스승을 공경하는 풍토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여전히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손길이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초등학교 2학년 때 노금돈 선생님이 사주신 교과서와 전과.
그것은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너도 할 수 있어.”
그 메시지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속에 울린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메시지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제야 안다.
내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금돈 선생님이 내게 그러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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