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쩍고 서툴었지만, 그건 분명 나의 첫 발걸음이었다.
미국 초등학교 입학은 9월이었다. 7월에 이민을 온 우리는 입학일이 다가오기 전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바쁘게 준비했던 것 같다. 동네 공립학교를 선택했고, 다행히도 집에서 약 다섯 블록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그 거리는 나에게 미국에서의 첫 등교길이 되었다.
학교 입학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매우 많았다. 출생증명서, 예방접종 증명서, 재학 증명서, 거주지 증명서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리는 병원을 다녀오고 영사관을 찾아가며 여러 날을 서류 준비에 쏟아부었다. 그 시기의 기억은 항상 서류 더미와 함께였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입학 시기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나는 5학년, 동생은 3학년으로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다.
원래 동생은 부모님이 픽업해야 했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인 내가 있어야만 퇴교가 가능했다. 그래서 매일 우리는 함께 등교하고 함께 퇴교해야 했다.
미국의 공립학교였지만 교복이 있었다. 하얀 셔츠에 남색 치마 또는 원피스를 입었다. 입학 전에 엄마와 함께 교복을 사러 갔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도 입어본 적이 없는 교복을 미국 초등학교에서 처음 입게 되니, 어색하고 낯설었다. 게다가 그 교복은 촌스럽고 정말 예쁘지 않았다. 그때의 교복 사진은 아직도 어딘가의 앨범 속에 숨어 있다.
동생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학교에 적응했다. 한국에서 3학년을 다니며 영어 수업도 들었던 덕분에 외국 친구들과 한국 친구들 모두와 금세 친해졌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낯을 많이 가리고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던 나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항상 한 발 물러서서 나만의 벽을 세우고 있었다.
5학년 교실의 담임 선생님은 중국계 미국인 여성이었다. 내가 막 이민 왔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책상 네 개가 모여 네 명이 앉는 구조였는데, 나와 같은 조에는 모두 한국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한국어 수업도 함께 수강했다. 사실 그 수업은 한국어를 배우는 클래스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온 아이들을 위한 교실이었다. 선생님도 한국인이었고, 어린 마음에 학교에서의 어려움이나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10월이 되자 처음 듣는 '할로윈'이라는 행사가 다가왔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의상을 입고 학교 밖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행사를 준비했다. 우리는 그 행사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의상을 입고 오라는 안내문을 받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머리를 맞댄 끝에 '귀신의 날이니까 처녀귀신 복장을 하자'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내가 입은 것은 단순한 하얀 원피스였다.
퍼레이드 당일, 학교에는 요정, 드라큘라, 디즈니 공주, 슈퍼히어로로 변신한 아이들이 가득했다. 화장을 하고 반짝이를 붙인 친구들은 모두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화려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는 검은 머리를 풀고 하얀 원피스 하나만 입은 채 운동장에 서 있었다. 퍼레이드를 나가기 전, 일렬로 선 우리 반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다.
'넌 뭐야?'
'... 난 한국 귀신이야.'
그때는 정말 창피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귀여운 추억이다.
아마 내가 6학년, 동생은 4학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퇴교 후 함께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동생이 친구 문제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화가 나서 그 친구에게 연락하라고 시켰다. 놀이터로 불러낸 뒤 친구를 세워두고, 왜 내 동생을 괴롭히느냐고 따졌고, 결국 손찌검까지 하고 말았다. 그날 엄마는 퇴근 후 그 친구의 집에 찾아가 정중히 사과를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혼날까 봐 잔뜩 걱정했다. 엄마는 싸운 것에 대해 엄하게 말씀하셨지만, 끝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낯선 미국 땅에서 언니와 동생이 서로 의지하고 지켜주는 건 기특하다.'
방법은 잘못됐지만, 그 마음만큼은 소중히 여겨주셨다.
그리고 6학년 어느 날, 나는 유독 예민한 상태였다. 그날 담임 선생님이 부재 중이었고, 대신 들어온 대체 교사 아래에서 교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 할 것 없이 떠들고 장난치며, 교실은 통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나는 맨 뒤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는데, 내 주변이 특히 시끄러웠다. 참다 못해 옆에 있는 남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지만, 그 중 한 아이가 장난으로 내 필통을 만지는 순간, 뭔가가 ‘탁’ 하고 끊어졌다. 나는 씩씩대며 책가방을 챙기고 교실을 나와버렸다.
집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처음에는 속이 시원했다. 나도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지만, 점점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사실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동생 때문이었다. 내가 퇴교 시간에 없으면 동생은 혼자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생각에 자존심을 눌러 담고 다시 교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올 때는 조용히 나왔지만, 다시 들어갈 때는 누군가에게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어느 반인지, 왜 늦었는지에 대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침에 학교에 왔었는데, 남학생이 괴롭혀서 집에 가려다가 다시 온 거예요.'
정말 당당했던 것인지, 철이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선생님과 엄마 모두 알게 되었다. 내 생애 첫 반항은 그렇게 조용하고 어설프게 끝났다.
6학년 졸업식 날, 강당에서는 졸업 파티가 열렸다. 모두가 파티 복장을 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신나게 어울렸다. 나는 여전히 가장자리 의자에 앉아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남자아이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Would you like to dance with me?'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정말 기뻤다. 그런데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I’m not crazy!'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는지,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그 말 이후로 그는 돌아섰고, 나는 강당 구석에서 이불킥 각본을 다시 쓰고 있었다. 내 인생 첫 졸업 파티는 그렇게 끝났다. 춤도, 대화도 없이. 그저 가장자리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부끄럽고 어리석으며 자존심만 가득한 어린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