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액'이라는 달콤한 허상

0이 몇 개인지보다 중요한 것들에 대하여

by 구매가 체질

얼마 전, 회사 전체 메일함에 느낌표가 가득한 공지가 떴다.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 소식이었다. 사무실 곳곳에서 동료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외부에서는 벌써부터 우리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내 모니터에 떠 있는 프로젝트 예상 원가와 현금흐름 계획표를 바라봤다.


환호하는 동료들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이 성과가 얼마나 많은 동료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졌는지 잘 안다. 다만, 전략이나 재무 파트에서 숫자를 보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수주액'이라는 거대한 숫자가 만들어내는 착시효과와, 그 뒤에 가려진 진짜 현실을 말이다.


‘얼마짜리 계약’이라는 질문의 함정


"그래서 그 계약, 얼마짜리예요?"


프로젝트를 따내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이다. B2B 비즈니스에서 '수주액'은 마치 전투의 승리를 알리는 훈장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훈장은 때로 우리의 눈을 가린다. '얼마나 남는 계약인가?', '대금 회수는 문제없는가?'라는 훨씬 더 중요한 질문들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모니터 속에는 다른 숫자들이 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투입될 인력과 시간,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대비한 예비비, 그리고 무엇보다 분기별로 들어올 현금 계획. 이 숫자들을 모두 더하고 빼면,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계약이 사실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주액이라는 '결과'에 환호하는 동안, 우리는 수익성이라는 '과정'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숫자를 숨겼더니,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과감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우리가 수주액을 외부에 자랑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내부에서도 이 숫자를 강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처음엔 혼란스러울 것이다. 가장 확실한 성공의 잣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조직을 근본적으로 건강하게 만들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첫째, 내부의 시선이 '수익성'으로 향한다. 수주액이라는 목표가 사라지면, 사업개발팀은 '얼마짜리' 계약이 아닌 '얼마나 남는' 계약을 가져올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프로젝트팀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을지를 더욱 치열하게 연구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매출 달성'이 아니라 '이익 실현'이 된다.


둘째, '진짜 성공'을 정의할 수 있다. 수주액이라는 단 하나의 숫자가 성공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게 된다. 프로젝트의 진짜 성공은 무엇일까? 그것은 '고객의 문제 해결', '성공적인 결과물 납품', '안정적인 이익 확보' 그리고 그 결과로 따라오는 '고객의 재계약'일 것이다. 우리는 성공을 다각적으로 정의하고, 그 과정 자체를 축하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셋째, 우리는 외부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진다. "100억짜리 프로젝트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식의 불필요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숫자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실력과 결과물로 고객 및 시장과 소통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 브랜드에 대한 더 깊은 신뢰를 쌓는 길이 될 것이다.


승리의 기준을 다시 쓰다


물론 당장 수주액 발표를 중단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투자자에게 성장성을 증명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특히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있는 실무자들이 먼저 '수주액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동료의 성공에 함께 박수치되, 우리의 시선은 손익계산서의 가장 아랫줄과 현금흐름표의 최종 숫자를 향해야 한다.


진정한 승리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고 우리 통장에 약속된 이익이 온전히 들어왔을 때 찾아온다. 그 승리의 기준을 다시 세울 때, 우리 조직은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