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빨간 코와 창백하게 덧칠된 얼굴,
웃는 듯 일그러진 입꼬리 위로
검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오늘도 나는 피에로 분장을 한 채
원형의 서커스장을 무의미하게 맴돌았다.
발목에는 하찮은 쇠사슬 하나가 채워져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족쇄가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운명의 쇠사슬처럼,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붙들어 매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코끼리처럼,
나는 그 하찮은 사슬의 원형 밖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수많은 관객들의 눈은 나를 향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시선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나를 꿰뚫었다.
군중 속, 유독 낯익은 여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은 깊은 슬픔과 함께 나를 향한 원망으로 일렁였다.
전력을 다해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사슬은 나를 허공에 허우적거리게 할 뿐이었다.
입술을 달싹여 여인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보려 해도,
그 흔한 이름 한 조각조차 기억의 안갯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이내 여인은 희미해지더니 군중 속으로 사라지고,
사방은 삽시간에 맹렬한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맹렬히 타올랐고,
그 속에서 수많은 비명과 함께 어린 얼굴들이 일렁였다.
매캐한 연기가 폐 속을 긁어 내렸고,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태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