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중 다행이 있어 다행이야

화가 많은 자폐아와 함께 하는 삶

by 셀린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다.


자폐아를 키우다 보면 책임과 돌봄에 치이며 육체적,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리는 일이 잦고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커지는 자폐성 장애 특유의 행동들로 인해

사회적인 이해를 받지 못하는 상태로 점차 _가족이 통째로_ 사회에서 고립되어 가는 수순을 밟게 되는데

이런 일들은 부부와 가족이 함께 분담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비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런데 보호자인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면 그 일상은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

숨 쉴 틈 없는 와중에도 해야 하는 일들은 끝이 없을 텐데 지금보다 더 치열할 그 삶은 대체 어찌 견딜 수 있을까.


주변에서 자폐나 장애가 있는 아이 문제로 싸우고 헤어지는 경우나 사례를 여러 번 보고 듣는데

우리는 그렇다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머님은 아직 중환자실에 계시고

남편은 다 써버린 연차를 어찌 메꾸려는 지 오늘 오전도 병원으로 출근한다.


김치냉장고 중간칸이 망가진 건 몇 달 전이지만 다른 칸을 쓰면 돼서 빈칸으로 두고 그럭저럭 지내왔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메인 냉장고의 냉동칸에 얼려둔 과일과 채소, 고기들이 다 녹아 바닥에 물이 흥건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자리도 얼마 없는 김치냉장고 한쪽 칸을 겨우 비우고 냉동실 식재료들 중 살릴 수 있는 것들만을 옮기며

아 이제 냉장고마저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구나.

좌절하려는 순간

주섬주섬 남편이 냉장고를 비워주는 모습에 속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님 병원에 들렀다가 출근해야 하는 남편인데

아침 일찍부터 아이 등교버스를 태워 보내고 몇 주간 관리를 못해 엉망진창이 된 마당을 정리하고 들어와

멍하니 앉아있던 그.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봐도 무엇을 해도 그 무엇 하나 맛있고 즐겁지 않을 상태일 텐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야.

가파른 낭떠러지 위에 있어도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 있어서.






작가의 이전글또다시 마주친 인생의 고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