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끼리 만나면 '국내연애'인가요?
주로 한국에서만 쓰이는 단어가 있다. '국제연애.' 그리고 '국제커플'. 처음 들었을 때부터 어색했다. 그럼 부산에 사는 철수랑 전주에 사는 영희가 사귀면 '국내커플'인가?
살면서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봤지만, 연애는 대체로 비슷했다. 국적이 다르고, 언어와 문화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 하지만 결국 연애라는 건 사람과 사람이 하는 거다. 특정 국적이기 때문에 이렇고, 특정 인종이라서 저렇고… 말하는 건 너무 게으르고 구시대적이다.
가끔 유튜브의 묘한 알고리즘 때문에 '국제커플' 영상들이 뜬다. 커플 브이로그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인 여자친구와 치킨 먹방" "○○인 남자친구와 롯데월드에 간다면?" 같은 식의 제목들이 참 이상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찍은 영상일 뿐인데, 왜 연인의 국적이나 인종을 클릭베이트처럼 소비할까?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국제커플 태그가 쏟아지고, '혼혈아기' 태그는 덤이다. 백인 남자가 커플 사진을 올릴 때마다 내 아시아인 여자친구 같은 태그를 달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솔직히 레드 플래그 아닌가? 옐로 피버라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다른 인종끼리 만날 때 오는 밈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커플이 일상적으로 저런 태그를 다는 건 참 낯설다.
내 주변에도 국적과 인종이 다른 커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파트너에 대해 얘기할 때 "얘는 ○○인이라 그래." "얘는 ○○인이라 좋아." 같은 말을 하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다양한 국적을 만나봤다며 자랑처럼 늘어놓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름이나 성격으로 기억하지, 굳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부터 떠올릴 필요가 없으니까. 그저 누구나 그렇듯이, 연애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나 고민을 나누는 게 다다.
좋은 뜻에서 쓴 거겠지만 국제연애 팁, 외국인 남친 사귀는 법 같은 글들은 볼 때마다 한숨부터 나온다. 누군가의 국적을 전제로 ‘특별한’ 연애법이 존재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색하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작은 해프닝 정도라면 모를까, 그마저도 만나다보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부분이다.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의 문화나 배경을 경험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파트너의 문화를 체험하는 영상이나, 파트너의 나라에 가서 살게 되면서 느끼는 점을 재미있게 풀어놓은 영상들도 많다. 흑인 여자친구를 사귀고 스타일이 바뀌었다는 밈 같은 것도 그렇다. 영어권에서도 ‘Interracial couple’ 같은 표현은 이런 맥락에서 잠깐 쓰일 뿐이다. 이처럼 사회·문화 자체에 대해 다룰 때 파트너의 인종이나 국적을 언급하는 건 별 생각 없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파트너의 국적과 인종만 강조하는 건, 그 자체를 대상화하며 '팔고 있다'는 느낌까지 준다. 대부분의 해외 커플 채널은 브이로그나 데일리 콘텐츠를 올릴 뿐이다. 굳이 한국처럼 모든 영상에서 파트너의 국적이나 인종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럼 왜 유독 한국에서는 '국제연애'라는 개념을 그렇게 강조하는 걸까? 외국인을 보기 쉽지 않은 나라라서?
글쎄, 딱히 그렇지도 않다. 요즘은 외국인도 많고 한국인들의 영어 실력도 괜찮은 편이다. 한국 여행이 유행하면서 외국인과 교류할 기회도 많아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외국인과 연애하는 나’는 뭔가 색다르고, 자랑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있는 걸 보면, 한국 사회가 가진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한국 방송만 봐도 이런 분위기가 보인다. 한국 연예인들이 해외에 가서 외국인들에게 밥 차려주는 프로그램이 유행했던 거나, 외국인들이 한국어 몇 마디만 해도 호들갑을 떠는 모습들. 연예인이 영어로 주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면 말이다. 한국인들은 외국인(특히 서구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꽤 강한 것 같다.
인종차별적인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외국인, 특히 백인 모델이 등장하면 자동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로 소비되는 광고만 봐도 그렇다. 덕분에 누군가 한국에서 비교적 손쉽게 꿈을 이루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이런 현상 자체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서구 중심주의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지만, 여전히 외부의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대단한 나라야!’라는 걸 외국인들의 반응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국제연애’라는 것도 단순한 연애의 한 형태가 아니라, 색다른 '글로벌' 경험처럼 포장되는 것 아닐까?
최근 '국제커플'들이 늘면서 한국도 국제화 단계에 올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비한국인과 연애한다고 해서 굳이 ‘국제연애’라는 단어로 구분 짓는 한, 갈 길은 멀다.
별것 아닌 단어지만, 별거 아닌 단어라서 더 불편하다. 한국인과 연애하면 그냥 ‘연애’고, 비한국인과 연애하면 ‘국제연애’라고 분류한다. 은연중에 연애의 기준은 한국인과 하는 것이라는 인식까지 깔려 있다.
연애는 결국 연애다.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일 뿐. 국적과 인종을 소비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순간, 비로소 진짜 연애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