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돌책이 내게 던진 질문, 읽는다는 것의 무게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을 뿐인데
손목이 저릿하게 흔들렸다.
두께만 11cm.
총 3,656쪽.
한국 출판 역사상 가장 두꺼운 소설,
"춘추전국기"를 마주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이건 그냥 책이 아니었다.
마치 작은 건축물 같았다.
누군가는 보통 ‘벽돌책’이라고 부르겠지만,
그 무게는 내게 보통이 아니었다.
한 권에 담긴 열한 권의 세계
원서는 총 11권.
일본의 대하 역사소설 『신서태합기』를
출판사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단 한 권으로 묶어냈다. (깊이 감사드리는 바다)
거대한 몸체 속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살아 숨 쉬고, 전국시대의 전쟁과 협잡,
인간 군상의 욕망이 한 호흡 안에
겹겹이 깔려 있다.
페이지를 한 장 넘길 때마다
수십 년의 역사와
수많은 전쟁터가 손끝에 쏟아져 나왔다.
삼국지가 중국의 *집단 무의식이라면,
춘추전국기는 일본의 원형 신화다.
그 원형을 고스란히 내 손안에 담고 있다는 것,
그게 이 책의 묘한 압도감이었다.
종이 위에 새겨진 장인정신
이 책은 단순한 묶음이 아니다.
수공예 제본으로 3,656쪽을 붙잡아 세웠고,
속표지에는 매직패브릭이라는
독특한 질감의 원단이 쓰였다.
표지에는 일본 우키요에의 거장,
츠키오카 요시토시의 그림이 자리했다.
검은 말 위에 선 무사, 번개처럼 휘두르는 창.
그림만으로도 시대의 긴장이 살아났다.
책은 읽기 위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예술품으로 만들어졌다.
누군가의 손길, 누군가의 시간,
그리고 장인의 고집이 겹겹이 배어 있었다.
100장의 삽화가 전해주는 숨결
본문을 읽다 보면
불현듯 등장하는 삽화가 있다.
전국시대의 전투 장면, 장수들의 초상,
성곽의 모양과 무기의 형태.
그림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만 굴리는 게 아니라
눈앞에서 생생히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 덕에 이 책은
소설을 읽는 동시에
역사서를 탐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나를 포함한 독자는
그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또는 시대의 공기와 맞닿으며 전율하기도 한다.
벽돌책이 주는 존재의 무게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나는 읽는 사람에서 견디는 사람으로 변했다.
페이지를 붙잡을 때마다 손목이 내려앉고,
잠깐 들여다보려다가도 책장을 덮으면
책상 위에 탑처럼 남아 있었다.
이건 ‘소설 읽기’라기보다
거대한 산을 마주한 기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는다.
책은 꼭 가벼워야만 할까?
빨리 읽히고 쉽게 소비되는 것만이 제 몫일까?
어쩌면 이 책은 나에게 질문하듯
‘읽는다는 것의 무게’를 물어오는 존재였다.
넘어야 할 장벽이자, 품어야 할 덩어리?
내게는 그런 상징처럼 다가왔다.
(200페이지부터 포기하고 싶은 건 사실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찾는가
삼국지도, 춘추전국기도,
결국 인간의 욕망과 권력,
배신과 우정을 이야기한다.
세 영걸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이 시대 우리의 모습까지 보인다.
권력에 끌리고,
명분으로 싸우고,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고대의 영웅담 속에서
나는 현대의 내 그림자를 읽는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는 것 아닐까.
책장을 덮으며 남는 질문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책상 위에는 두툼한 존재가 남아 있었다.
읽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책 자체가 나의 공간을 바꾸어 놓았다..
벽돌책이란 말이
이제는 더 이상 힘듦이 아니다.
그 두께와 무게는 결국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삶을, 그리고 역사를,
종이 위에 3,656쪽이나 쌓아 올린 시간.
나는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함께 걸어냈다는 사실에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벽돌 책을 부순 기분 좋은 자기만족?)
당신이라면 이런 책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도전하듯 읽어낼까,
아니면 한쪽에 전시하듯 두고 바라볼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다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 묻고 싶다.
당신에게 책은, 무게입니까 아니면 길입니까?
(이제 "총균세" 쌉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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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무의식: 삼국지는 중국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공통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