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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세마리 Sep 19. 2015

스펙좋은 남자와의 소개팅3

성식이형 닮은 한의사

기분좋은 햇살이 내리쬐는 토요일 세시.

우리는 양재역의 파ㅇㅇㅇ에서 만났다. 내가 먼저 도착했고 그는 까맣고 크고 반딱이는 뉴그랜저를 끌고 나타났다. 첫인상의 그는 딱 성시경이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성시경과 비슷한 안경을 썼다. (사실 키크고 안경이 잘어울리면 다 성시경같긴하다..) 전국의 한의사를 다 모아놓고 성시경닮은 순대로 줄을 서시오~ 하면 적어도 세번째안으로는 섰을 것이다. 하지만 성시경보다 훨씬 차가워보였다.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무슨일을 하신다고 했죠?"

라고 묻길래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니

"그 일을 하는데 대학은 나와야하는건가요? 대학이 필요없을 것 같은데.."

라며 진심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지은 첫 표정이 '의아해 하는 표정'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아.. 대학은 나와야 할 수 있는 일이죠..제 일이 특성이.. 이렇고 저렇고..미주알 고주알.."

 당황한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하는 일이 '대학을 나와야 할 수 있는 일임'을 두괄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설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는 ㅇㅇ동 (부자동네로 인식되는 곳이었다) 사는데.. 어디사신다고 했죠?

이번엔 사는곳을 물어왔다.

"전 ㅇㅇ에 살아요~"

그는 갑자기 씨익-하고 웃으며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아~ 공업도시~?!"


"아..네..하하 공업도시죠..계획도시기도 하구요~"

"그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동네겠네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동네가서 자고?! 응?!"

"네???"

"그렇잖아요 공업도시니까 다들 공장이 직장아닌가요?"

"하하 공업지대는 맞지만 공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아닌사람도 있겠죠..;"

이런 동네라 생각하시는듯..


또한번 당황한 나는 어떻게 맞받아쳐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커피만 홀짝홀짝 마셔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내가 여기에 왜 있고 이사람은 여기에 왜 나온거지? 이런 의문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기분이 상당히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꾸역꾸역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대여섯살로 보이는 꼬마아이가 다가왔다. 우리 사이가 신기한지 우리 테이블 칸막이위로 머리를 빼꼼 내밀더니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는 그의 왼쪽에 갑자기 나타난 그 꼬마아이를  '얘는 뭐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벌레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애엄마는 모하는데 얘를 안데려가?'
이런생각을 하는 것도 같았다.

그당시 우리가 만나 대화를 한지 한시간 이십여분 지났을 때였다. 그는 그 '벌레보는 듯한 표정'을 쉽사리 얼굴에서 지우지 못한 채, 값나가 보이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그만 일어날까요?"
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를 데려다 줄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듯이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까맣고 크고 반딱이는 뉴그랜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매니져가 나 물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사람을 보내줬나? 라는 생각부터 스펙좋은 사람이라 좋아해서 벌받는건가 하는 생각까지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제껏 한 소개팅중에 가장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던 소개팅이었다.


소개팅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스펙으로는 절대 상대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스펙은 대단하지만 마음의 따뜻함, 포용력, 배려심 등 마음의 스펙은 어떠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스펙'은 막 훌륭하지 않아도 '마음의 스펙'이 훌륭한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스펙에 가려져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다면 소개팅..세상에 그처럼 무서운 사기극이 또 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스펙을 어디까지 봐야하는지. 어느정도 따져야 하는지.

하지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안다. 겉으로 보이는 스펙보다는 '마음의 스펙'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그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것이다. 사소한 것에 눈이 가려져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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