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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마르는 샘물

133일 차

by 다작이

하필이면 오늘 주머니에 돈이 딱 떨어졌다. 완전 바닥이 난 건 아니지만, 어딜 가서 친구와 점심 한 끼 못 먹을 정도만 남았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럴 때가 있기 마련이다. 화수분을 집에 갖다 놓고 원하는 만큼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넉넉한 듯해도 결론적으로 세상에 마르지 않는 샘물은 없다. 그러고 보니 돈을 마구 쓸 때 '물 쓰듯 쓴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만 봐도 돈과 물은 꽤 유사점이 많아 보인다. 돈 얘기를 하다 어느새 물 얘기까지 흘러갔다. 요지는 이거다. 꽉 잠근 수도꼭지에서 한두 방울 떨어지는 만큼만 남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신용카드를 전혀 쓰지 않는 편이다. 교통비로만 쓰지 나가서 뭘 사거나 끼니를 해결할 때는 무조건 현금으로 지출한다. 적어도 어떤 지출에 대해 미리 아내와 협의가 된 부분이나 특히 그중에서도 혼자가 아닌 가족 모두와 관련된 일에만 신용카드를 사용하겠다는 내 나름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는 내 용돈에서 충당한다. 내 용돈은 18만 원이다. 대략 하루 6천 원 꼴로 계산한 금액이다. 모두가 잘 알지 않을까? 용돈이 들어오는 날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솟고, 다 떨어져 가는 즈음엔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된다는 걸 말이다.


성격상 허영이 있다거나 허풍스러운 사람은 아닌데,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사람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당장 어딜 나가고 싶은 용기도 생기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경우엔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그러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든다. 내가 유독 심한 건가 싶었지만,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자기들도 그렇다고 얘길 했다. 반드시 내 삶이 혹은 내 행동이 타인들에게서 객관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건 아니나,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하니 어느 정도는 마음이 놓였다.


어쩌면 내가 소심한 성격이라는 걸 들키기 싫어서 이렇게 밑밥부터 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씀씀이가 생각보다 헤픈 걸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변에 물어봐도 내 정도면 결코 넉넉하게 받는 편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으로 오면서 무심코 지갑을 열었다. 1만 8천 원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주머니엔 5백 원짜리 동전 5개를 포함해서 3천 원 정도 있었다. 도합 2만 1천 원. 그런데 오늘 날짜는 12월 6일이다. 돌아오는 용돈 수령일이 17일이니 아직도 열하루가 남았다. 오늘 하루가 다 갔다고 쳐도 남은 날은 열흘이나 되었다. 하루에 2천 원 꼴로 쓰면 된다는 계산이 성립했다. 순간 식은땀이 났다. 2천 원으로 뭘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2천 원이면 요즘 어딜 가든 그 흔한 커피 한 잔 사 마실 수 없는 돈이다.


일단 도서관에 입장하기 전에 2천4백 원을 주고 레쓰비를 2개 샀다. 글을 쓰면서 한 모금씩 홀짝 홀짝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시면서도 오늘 하루 쓸 돈이 다 날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저녁밥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싶었다. 아무리 싼 곳이라도 최소 5천 원은 지출해야 그나마 요기라도 할 수 있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늦게 가서 집에서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 문을 닫는 5시 이후에는 동네 집 앞 스타벅스에 가서 글을 쓸까 싶은데, 얼마 전에 지인이 보내 준 음료권이 있어서 그걸 쓰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저녁때쯤 32년 지기가 얼굴 한 번 보자고 연락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정도 사이라면 사정을 말하고 만날 수 있겠지만, 아무리 친해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법이다. 연락이 온다면 만나야 할지 다음으로 미뤄야 할지 고민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일단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글을 쓰고, 녀석과의 문제는 연락이 왔을 때 결정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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