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일 차
오늘은 일부러 하루 종일 농땡이를 피워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침부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누워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튜브를 봤다거나 책을 읽지도 않았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었다. 며칠 동안 기력을 다 소진한 탓인 듯했다. 평균적인 기량의 근처에도 못 가지만, 어쨌거나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했다. 선수 출신에 버금가는 일반인과 100m 출발선에 섰다면 사력을 다해 뛸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으로 세 편의 원고를 퇴고해서 기어이 보냈다. 눈알이 빠질 정도로 들여다보고 또 봤다. 내가 쓴 글이니 당연할 테지만, 어느 쪽 몇째 줄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꿰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고 나니 쉽게 말해서 일시적인 번아웃이 온 것 같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소설 세 편을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손을 댔으니 힘이 빠질 만도 했다. 지난 금요일에 마지막 세 번째 원고를 우체국에서 보내던 순간, 마치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 되었거나 나와의 작은 약속을 지켰다는 내 나름의 자부심이 나를 들뜨게 했다. 살면서 사실 이런 경험을 과연 어딜 가서 얼마나 해 볼 수 있겠나 싶었다.
글이라고 하면 이젠 쳐다보기도 싫다, 뭐 이런 건 아닌데,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좀처럼 글에 손이 가지 않았다. 아마도 1000일 글쓰기라는 나 자신과의 또 다른 약속이 없었다면 지금 이 글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빌미로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잤고, 더 많이 여유를 부렸다.
일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그런 구절을 본 기억이 났다. 우리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반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자유도 우리에게 있다고 말이다. 아마도 그 구절에 기대어 최소한 이번 주말은 그냥 보내기로 작정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빈둥거릴 자유를 운운하는 건 나태한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치졸한 변명일 뿐이다. 빈둥거릴 자유가 아니라 그냥 빈둥거리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는 법은 없다. 늘 어떤 일에 꽂혀서 틈만 나면 그 일을 해 오던 누군가는 아무리 그걸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다가도 막상 어떤 임계점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일에 다시 빠져들기 마련이다. 정확히 오늘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집안 청소를 한 뒤에 일단 샤워를 끝내고 다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멀뚱멀뚱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차라리 밤하늘이었다면 몇몇 별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단순한 패턴대로 몇 가지 무늬가 반복되는 천장을 바라보는 건 사실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아마 족히 한 시간은 그렇게 누워서 빈둥거렸을 것이다. 그 나른한 틈의 한가운데를 비집고 나오는 생각이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 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그 긴 시간을 누워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일은, 생각이 났을 때 저질러야 한다.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넣고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무슨 내용의 글을 쓸지, 몇 편의 글을 쓸지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없다. 내게는 1000일 동안 글을 써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그저 쓸 수 있는 데까지 써 보는 것이다. 한 편만 썼다고 해서 너무 적게 썼으니 더 쓰라고 하는 이도 없고, 열 편 썼다고 해서 너무 많이 썼으니 그만 쓰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게 어쩌면 내게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이 아닐까? 그리고…….
좀 못 쓰면 어떤가? 지금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이때를 즐기고 싶다. 뭐,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정식 작가가 되고 난 후의 글쓰기를 생각한다면 이건 어쩌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