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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글

by 다작이

과부의 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말이 있다. 동병상련,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말도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동정하고 돕는 관계를 뜻하는 말인 듯하다. 뜬금없이 동병상련이니 과부와 홀아비가 어떠니 하며 말을 꺼내는 건 내 친구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면 그는 내 친구라고 할 수 없는 관계다.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친구처럼 지내기로 한 사이일 뿐이다.


시쳇말로 그는 나처럼 마이너다. 미국의 프로야구 세계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뛰는 선수들이 소속된 리그가 메이저 리그라면 거의 이목을 끌지 못하면서 근근이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마이너 리그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난 이곳 브런치에서 마이너 중의 마이너다. 우연찮은 계기로 서로 몇 번 왕래를 했고, 나이가 같다는 사실에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너나 나나 둘 다 마이너다’라는 현실 인식이 밑바탕 되어 가능했던 일이었으리라. 물론 대놓고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네 글은 변변찮다’라고 못 박는 것만큼 상처되는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일까, 그와 난 서로 왕래는 해도 결코 댓글 따위를 남기지 않는다. 올린 글은 반드시 완독해도 기껏 해야 라이킷만 눌러줄 뿐이다. 아무리 친해도 상대방이 쓴 글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하기는 쉽지 않다. 누워서 침을 뱉으면 그게 어디로 가겠는가? 결국 순식간에 내 얼굴 위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카카오톡 메신저에서 서로 친구 추가하고 종종 근황을 주고받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절대 상대방의 글에 대해 가타부타 일장연설을 늘어놓지 않는다.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식으로 글을 썼을지 충분히 짐작하기에 그저 그 과정에서의 그를 위로해 주고 싶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네 브런치북 글 좋더라.”

“그래? 읽어보니까 괜찮았단 말이지?”

냉정하게 말하면 그의 글이 그리 좋지는 않다. 글이 좋다면 왜 그나 나나 마이너에 머무르고 있겠는가? 글쓰기에 관한 한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내가 보기에도 그의 글에 어떤 흠이 있는지 정도는 눈에 보인다. 그러나 결코 말을 꺼낼 수 없다. 잘했다, 수고했다, 재미있더라, 계속 열심히 쓰기를 바란다, 따위의 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친구가 얼마 전부터 새로운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있다. 1주일에 두 차례 연재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꾸준히 나는 그의 방에 들러 읽는다. 그 이전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브런치북 발행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아무리 굳건해도 브런치북을 발행하다 보면 자꾸만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에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지난번 글보다 못하네.’

‘이 표현은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읽으면서 감히 주제넘게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다. 정작 나 자신은 그만한 글을 쓰지 못할 게 분명한데도 ‘나라면 그렇게는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그랬던 그가 며칠 전에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전에 시작한 브런치북의 연재를 접을까 말까를 한창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대략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왜 그러냐며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반응이 너무 시원찮아서 도무지 쓸 맛이 안 난다고 했다. 물론 그 친구 역시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러나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키듯 자신의 글을 공유하고 일종의 피드백을 기대할 수 있는 글쓰기 플랫폼에 들어왔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어차피 뚜렷한 대답을 기대하고 보내온 메시지는 아니었다. 그냥 스스로 말만 던져도 이미 우리는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인 셈이었다. 느닷없이 그가 내게 물었다.

“너도 지금 소설 쓰기에 관한 브런치북 연재하고 있잖아? 그건 사람들의 반응이 좀 어때? 그러고 보니, 어딘가에 그 글을 써서 정기적으로 올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알면서 묻기는 왜 묻냐?”

안 그래도 나 역시 그가 말한 ‘그 글’을 쓰던 중에 뒤통수를 제대로 한 대 맞고 말았다. 같은 생각, 같은 감정, 같은 처지를 관통하고 있는 사이니 가능한 얘기가 아니겠나 싶다.


적어도 그나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어떻게 글을 쓰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라이킷을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고, 또 호응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알면서도 실천이 안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잔인하게도 글쓰기의 세계가 아닐까?

“말 안 해도 알지? 재미있게 써. 재미없으니까 그렇지 뭐, 너나 나나.”

그러고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아마도 내 생각이 맞다면 이쪽에서는 내가 호탕하게 웃었을 테고,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저쪽에선 그도 웃었을 것이다.


글쓰기라는 게 이래서 참 어렵다. 재능이 없다면, 감당할 만한 깜냥이 안 된다면 시쳇말로 쿨하게 접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게 글쓰기다. 말은 노력만 하면 되겠지 하면서도 정작 그만한 노력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그러면서 관심을 쏟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없을 뿐이라며 자기 자신을 합리화한다.


나는 바란다. 언젠가는 나나 그가 마이너의 세계를 뛰어넘어 메이저로 나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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