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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수요일

131일 차

by 다작이

월요일을 맞이한 게 불과 몇 시간 전 같은데 벌써 수요일이다. 도무지 뭘 한 기억이 없는데 한 주간의 절반이 지나버렸다.


사실 이 글의 시작을 이렇게 썼었다. 뭔가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전화 상단을 엄지손가락으로 밀어내렸다. 그랬더니 오늘이 수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 글자 차이일 뿐이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더니 글자 하나의 차이가 아침부터 나를 설레게 했다.

"오늘만 잘 넘기면 또 금세 금요일이 되잖아요." 월요일엔가 복도에서 만난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을 맞이했을 때 또 어떻게 한 주간을 보내나 싶다가도 눈을 들어보면 어느새 또 다른 주말이 눈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만약 이 글이 일기였다면 '2025년 11월 4일'이라고 날짜를 기입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이건 한 번 더 말해야겠다. 도대체 뭔가를 뚜렷이 한 기억이 없는데 벌써 12월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한 게 사람이라고 해도 어딘지 모르게 정도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마치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차에 올라타 마냥 앞으로 가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게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순식간에 금요일을 맞이한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건 곧 죽음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그리 대담하다거나 그걸 초월할 정도로 배포 있는 성격이 아니다. 애써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그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건 알 수 없다. 단지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닌데도 금요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게 이치에 안 맞는 것 같다.


무려 열한 달 전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랬다.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2025년의 첫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해돋이를 보러 가지는 않았지만, 나름으로는 몇 가지의 굳은 다짐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또 다양한 상황에 맞는 행동 지침과 크고 작은 계획들도 세웠다.

'2025년의 버킷리스트'

아마 이런 제목을 달았던 것 같다. 문자 그대로 다른 건 못해도 몇 가지 정도는 꼭 해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그랬던 게 마치 어제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벌써 올 한 해의 삶을 되돌아봐야 할 때가 되고 만 것이다.


그 버킷리스트의 구체제인 내용을 이 자리에서 까발릴 마음은 없다. 모두 일곱 개였는데, 형태만 다를 뿐이지 전부 글쓰기와 관련이 있다. 크기로 논한다는 게 모순적이긴 하나, 큰 것 두 개와 작은 것 다섯 개였다. 다 이루었냐고 묻는다면 절반의 달성은 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아직 한 달의 시간이 남은 만큼 내게 있어서 그것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 내겐 작은 목표가 오히려 더 버거웠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다소 희망적인 건 큰 목표 중의 하나를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큰 것 한 가지는 현재로 봤을 때 별 무리 없이 달성할 것 같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면 2025년의 내 삶은 최소 60점 정도는 줘도 되지 않겠나 싶다.


열두 달 중에서 열한 달이 의식도 못하고 있던 중에 가 버렸으니, 남은 한 달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이러다 보면 얼마 안 가 '2025년을 되돌아보며'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글을 쓰게 될 듯하다. 그때 쓸 말이 있으려면 남은 시간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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