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Love You Anymore'와 피스메이커의 고독
제임스 건?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새로운 DC 스튜디오의 공동 수장, 그리고 최근 화제인 신작 <슈퍼맨>까지. 이름만 들어도 요즘 히어로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감독이다. 그런데, 이 감독이 왜 그렇게 특별하다고들 할까?
<가오갤> 얘기는 이제 많이들 들어봤을 테니, 오늘은 조금 다른 작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바로 <피스메이커>다. WWE 출신 존 시나가 변기통 같은 헬멧을 뒤집어쓰고 등장하는, 다소 기이한 이 작품. 하지만 이 작품의 한 장면만 보더라도, 제임스 건이 얼마나 독특한 방식으로 캐릭터를 그려내는지를 알 수 있다.
단순히 웃긴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깊은 감정과 서사가 숨어 있다. 지금부터는 그 장면을 중심으로, 제임스 건이 어떻게 음악으로 인물을 만든 감독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감정의 구조를 설계하는 감독
제임스 건은 단순히 이야기의 흐름을 설계하는 감독이 아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서사로 끌어올리는, 감정의 구조까지 설계하는 연출가이자 예술가이다. 그가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은 독특하다 못해 유일하다. 단적인 예가 <피스메이커> 1화, 주인공 피스메이커가 글램 메탈 장르의 음악을 틀고 혼자 춤추는 장면이다. 여느 감독이었다면 이 장면을 단순한 유머 코드 혹은 짧은 감정표현의 방식으로 소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건은 이 장면에서조차 인물의 본질, 고립감, 감정의 균열을 섬세하게 펼쳐 보인다.
https://youtu.be/2e7_NaFiPQY?si=RXn-NmoW-jBLbKp2
"I Don't Love You Anymore"
가사와 감정의 절묘한 일치
그가 선택한 곡은 The Quireboys의 "I Don't Love You Anymore",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라는 뜻의 곡이다. 사랑은 끝났고, 친구들에게 외면받는,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독의 선언. 그러나 제임스 건은 이 노래를 단순한 무드 음악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노래의 가사 하나하나가 크리스토퍼 스미스(주인공 피스메이커의 본명)의 감정 상태, 처한 상황과 기묘하게 겹친다.
"Please don't look to me for help, all the pain is with yourself"
(더 이상 나에게 도와달라 하지 마, 이제 너의 고통은 다 너의 것이야)
마치 주변 인물들, 나아가 세상이 피스메이커에게 말하는 듯하다. 그는 아버지, 동료, 친구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구하지만,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스스로를 과장된 방식으로 위로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 행위는 더욱 깊은 고독을 드러낼 뿐이다.
몰입의 순간에 들어오는 음악
제임스 건은 이 장면을 감정이 몰입되는 타이밍에 정확히 배치한다. 피스메이커는 죽일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서 퇴원, 감옥에서 출소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아버지를 찾아가며,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지만 모두가 그에게 따뜻하지는 않다. 어쩌면 그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그런 반응을 유도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그 하루의 끝에는 그저 육체적인 사랑만이 있는 원나잇 상대만이 남아있다. 그녀의 집에서 피스메이커는 겉으로 들떠있지만 묘하게도 여전히 외로워 보인다.
그가 갑자기 속옷 차림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할 때, 웃음은 터지지만 동시에 묘한 씁쓸함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순간, 'I Don't Love You Anymore'의 가사가 공간을 채우며 관객의 무의식을 건드린다. 이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다. 연인, 가족, 친구들에게 버림받는 쓸쓸함의 노래를, 존 시나는 흰색 삼각팬티 속옷 차림으로, 바이브레이터를 마이크로 사용하며 부른다. 제임스 건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하고 유니크한 똘끼 있는 연출이다.
감정과 액션의 유기적 연결
더 나아가 이 음악은 단순한 정서적 장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곡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무렵, 원나잇 상대였던 여성이 갑자기 무기로 그를 공격한다. 감정적으로는 버림받고, 물리적으로는 죽임 당할 뻔하는 이 흐름은 노래 가사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감정과 행동이 나뉘지 않고, 하나의 연출 구조로 엮인다. 이는 오직 노래의 정서, 캐릭터의 고립, 그리고 연출의 타이밍을 모두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는 감독만이 가능한 방식이다.
음악을 인물로 만드는 연출
제임스 건은 'I Don't Love You Anymore'라는 단 한 곡으로, 피스메이커라는 인물을 완성해 낸다. 그는 음악을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캐릭터 그 자체로 만든다. 이 감정의 설계, 이 타이밍의 조율, 이 언어 외적인 서사가 바로 제임스 건이 가진 특별함이며, 우리가 그를 단지 유쾌한 히어로 감독으로만 보아선 안 되는 이유다.
고독한 영웅은 다시 돌아온다. 이번엔 혼자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제임스 건이 얼마나 섬세하게 인물의 감정을 설계하는 감독인지 알 수 있다. 단순한 유머나 자극으로 소비될 수 있었던 순간이, 음악과 연출을 통해 하나의 인물 서사로 확장된다. 피스메이커는 그렇게 단순한 히어로물이 아닌, 고독과 갈망, 만남과 회복, 자기 위로의 이야기로 다시 읽힌다.
다음 달인 2025년 8월, <피스메이커 시즌 2>가 공개될 예정이다.
과연 이 고독한 영웅은 어떤 감정의 흐름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게 될까.
제임스 건이 이번에도 음악을 통해 어떤 새로운 서사를 그려낼지,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