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다
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나쁘게 말하면 생각 없이 살았다고 해야 할 것 같고요
다르게 말하면 생각 대로 살았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저의 입장에선 오롯이 제 욕심대로 살아와 좋았다고 하면 되는데, 애써 나아 기르시고 가르치신 부모님 입장에선 조금 안타까운 결과물이 되어 드린 것 같아 조금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머니 당신도 지금은 이런 아들보단 산이 더 좋다고 하시니 내심 다행이란 생각이고, 마음 누일 곳을 찾으셨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죠. 저도 무척 좋아하는 산이지만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감사하기까지 하네요. 그리고 이제 인지하신 게지요. 저 녀석은 틀렸다는 것을.
"아무렴 어떠냐 너대로 살면 되지. 마누라 입, 자식 입 걱정 없이 네 입에 넣을 궁리만 하면 되니 인생 편해 좋겠다. 오라질 놈. 그나저나 등산 스틱이 좀 무겁더구나. 카본이 가볍고 좋다고 하던데..."
"단풍놀이 가실 때 들고 가시라고 진작에 주문했지. 메이커루다가. 풀카본이래. 하이엔드!"
생각보다 평화는 가깝고 어렵지 않더군요.
인정하고 요구하고 지불하면 되더라고요.
제사 다음으로 큰일인 김장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네, 한소리 하셔야죠.
"순애씨네 김장날 보니까 며느리가 둘이나 와서 돕던데, 내 팔자는 왜 이럴까? 응? 아들... 왜 그럴까?"
"애지간히 해~. 등산 스틱도 바꿔드리고 배낭도 사드렸잖아. 백수라 돈 빼기 힘들어. 그리고 얼마나 다행이야.
어느 댁 귀한 딸, 추운 날 소금물에 손 안담가도 되고. 그렇게 생각해요. 좋은 일 하신 거야"
"니 어미 손은 추운 날 소금물에 담가도 되고?"
"하얀 파카부터 벗고 얘기해요. 고춧가루 하나 안 묻혀 놓곤 유새는. 엔간하면 사 먹자니까. 일 벌인 사람이 어느 댁 어느 여사님이더라"
여동생과 매제, 조카들이 옵니다.
"삼촌~~~~"
"어이 손주들 삼촌한테 가까이 가지 마"
"왜요?"
"나쁜 물 들어"
끝내 하얀 파카는 벗지 않으시고 이리 해라 저리 해라 잔소리만으로 김장을 끝내십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절인 배추를 사 와서 그나마 수월하게 끝낸 것 같습니다. 사실 배추 절이는 게 보통 품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배추 쪼개고 소금물에 담가 숨을 죽이고 한번 뒤집어 다시 절이고, 절인 배추 건져서 최소 두 번은 헹궈야죠. 다시 건져내서 물 빼줘야죠. 아오. 생각만으로 허리가 아프네요.
시집와 매해 많게는 150 포기 적게는 80포기씩 담그셨으니 이제 그만하셔도 되지 싶어 어느 해부턴가 김장은 저와 두 조카들이 이어받아하고 있죠. 그리고 매해 저렇게 잔소리를 하십니다. 뭐, 덕분에 배추 절이는 일은 건너뛰게 되어 다행이고요.
"시스터~ 청주 좀 대워봐봐, 김치 속에 수육 한잔 해야지. 조카님들 상 좀 차리지"
술도 못 드시는 양반이 기분이 좋으신지 청주 몇 잔에 한탄이 시작됩니다.
"노인네 둘 돌아가시고 이제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니 아버지가 눕더라. 그렇게 내가 편한 게 싫은 거야. 징글징글해 이 집 식구들, 그러고 7년이다. 제도 힘들었어. 너도 힘들고, 이제 저것만 어찌하면 되는데 마음처럼 되는 게 하나 없어. 정말 생각 없냐? 산날보다 살날이 많은 놈이 왜 그러는지. 내가 때마다 큰돈 들여 병원 가는 게 저거 고생시킬까 겁나서 그래. 저게 내 마음을 알면 저러면 안 되는데"
"조카님들 할머니 한잔 더 드려, 주무셔야 돼"
"시스터, 날 풀리면 이번엔 정말 벚꽃놀이 한번 가자. 이번에 사드린 바람막이 며칠 못 입은 거 갖고 무지하게 아쉬워하더라. 나이 들더니 어리광만 늘어. 조카님들 삼촌 잔이 비었네"
내가
바라던 바다,
내가 나임을 인지한 시점부터 이미 있던 나의 바다.
다음에도 당신의 품에 찰 만큼 잘할 자신이 없어
일단 오늘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info.
영화_ 「바라던 바다」 2015년
좋아하는 문장_"예쁘지? [나들이를 위해 한껏 차려입은 말자의 말]"
공감하는 문장_"기준이 애매한 건 묻지 마시고 얼른 타요"
epil.
그리고 어머니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이 있어요.
담그는 배추 포기수도 줄었는데 이제 그만 포기하시죠.
다음이라... 묵은 김치로 만두 할 때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