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금요일의 교차로: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배우다
회사: 창밖의 풍경
목요일 밤, '온기의 기술'과 '환경 재설계'의 중요성을 깨달은 새벽이슬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을 맞았다. 회사에서는 이미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내려놓은 상태라, 마음은 가벼웠지만 몸은 아직 익숙한 루틴에 갇혀 있었다.
금요일 오전, 새벽이슬은 형식적인 인수인계 서류를 마무리하는 척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에는 한월이가 다니는 중학교가 보였다. 이제 중학교 3학년, 곧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아들이 보낸 힘겨운 시간들이 떠올랐다.
문득, 그녀는 생각했다. '저 학교가 '지역사회'구나. 내가 10년 동안 다니던 이 빌딩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구나.'
그녀는 책상 서랍에서 지난달 회의 자료를 꺼냈다. '지역사회 기여 방안'이라는 제목 아래, 늘 '금전적 후원'이나 '임직원 봉사 시간 3시간 채우기' 같은 피상적인 내용만 적혀 있었다. 회사가 지역사회를 보았던 시선은 늘 '주는 자'의 입장이었다.
그때, 부장이 다가와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새벽이슬 씨, 고생 많았어요. 이제 오늘 퇴근하면 주말인데, 푹 쉬어요. 남은 기간 편하게 지내요."
새벽이슬은 커피를 받아 들었다. "부장님, 궁금한 게 있어요. 우리 회사가 매년 지역사회에 '기여' 한다고 하는데, 저희가 얻는 건 뭘까요? '생색' 말고, 진짜요."
부장은 잠시 당황했다. "글쎄? 당연히 기업 이미지 제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새벽이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지역사회는 우리가 배워야 할 또 다른 교실'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늘 벽을 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은 부장에게는 낯설게 들렸지만, 새벽이슬 자신에게는 내일 강의에 대한 예습처럼 느껴졌다.
야간 대학: 울타리를 허무는 지혜
퇴근 후, 야간 대학으로 향한 새벽이슬의 금요일 첫 강의는 '지역사회교육론'이었다. 교수님은 '지역사회와 학교의 연계'에 대한 실제 사례를 들며 강의를 시작했다.
"지역사회교육은 학교 담장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의 자원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고, 학교의 인적 자원을 지역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이죠. 즉, '울타리를 허무는 일'입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팀 과제를 내주었다. '우리 캠퍼스 주변 지역의 잠재적 교육 자원 지도 만들기'였다. 팀원들은 처음에 학교 도서관, 박물관, 유명 학원 같은 뻔한 장소만 나열했다.
새벽이슬은 낮에 생각했던 '기업의 시선'을 반성하며 팀원들에게 제안했다.
"잠깐만요. 저희가 지금 너무 '전문가' 시선으로만 보고 있지 않나요? '배움'이 꼭 도서관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기 학교 앞에서 30년째 국밥집 하시는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도 배움이고, 밤마다 혼자 거리를 청소하는 분의 '노동의 가치'도 중요한 교육 자원이에요."
그녀의 시선은 팀원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이제 '주민센터의 복지사'가 아닌, '동네 골목길의 예술가'나 '오래된 세탁소 주인장의 경영 철학'을 잠재적 자원 목록에 추가하기 시작했다. 새벽이슬은 자신이 가진 '지역'에 대한 인식의 틀이 회사 생활을 통해 얼마나 좁아져 있었는지 깨달았다. 지역사회교육은 가장 소박한 곳에서 가장 귀한 지혜를 찾는 일이었다.
집: 지도 밖의 자원을 발견하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새벽이슬은 중3인 아들 한월이가 아직 거실에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월이는 미술 숙제로 '우리 동네 지도 그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지도는 온통 학교, 학원, PC방 그리고 자주 가는 편의점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마치 '입시 스트레스에 갇힌 중3의 동선' 같았다.
"엄마, 지도는 다 그렸어. 내 생활 반경!" 한월이가 뿌듯하게 지도를 보여줬다.
새벽이슬은 아들의 지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지도는 '효율적인 경쟁 동선'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었다.
"한월아, 이 지도가 정말 우리 동네의 전부일까?" 새벽이슬이 물었다.
"응! 내가 제일 많이 가는 곳들인데?"
새벽이슬은 펜을 들고 지도의 구석, 한월이가 전혀 가지 않는 곳에 동그라미를 쳤다. "여기는 할아버지가 매일 바둑 두시는 공원 쉼터고, 여기는 길고양이 밥 챙겨주는 아주머니가 있는 골목이야. 그리고 여기는 낡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뜨개질 배우는 작은 공부방도 있어."
한월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도 우리 동네야? 나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공부랑 상관없는 곳이잖아."
"맞아. 근데 한월아, 공부만이 전부는 아니야.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에도 귀한 이야기가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배우는 건 책 안에만 있는 게 아니야. 지역사회교육이 바로 그런 거야. 네가 평소에 '쓸모없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알려줄 가장 큰 자원일 수도 있어."
새벽이슬은 아들의 지도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퇴사는 그녀가 그동안 갇혀 살던 '회사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와, 세상을 훨씬 더 넓고 깊게 배우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중3 아들에게도 '입시'라는 울타리 밖에 훨씬 넓고 흥미로운 세상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엄마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육이었다.
'지역사회'라는 새로운 교실에서 깨달음을 얻은 새벽이슬, 주말 동안 그녀와 한월이의 '울타리 밖 지도 탐험'은 어떻게 완성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