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다.

낡은 해석을 넘어서, 나를 이해하는 여정

by 애니유칸

나는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빠르게 읽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누군가의 말투나 표정, 심지어 눈빛만으로도 상대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었고, 주변에서도 그런 나를 믿고 조언을 구하곤 했다.


나의 감각은 곧 나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그 감각이 때때로 나의 해석일 뿐이며, 때로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심리학 이론이 삶에 스며드는 순간


내가 가진 '독심술'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오류(Cognitive Error)' 중에 하나였다.


인지적 오류란,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말한다.


내가 가졌던 '독심술'은 특히 마음 읽기(Mind Reading)라는 인지적 왜곡에 해당한다. '마음 읽기'란, 상대방이 실제로 말하거나 표현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내가 이미 안다고 단정해버리는 오류이다.

나는 아들이 학교를 다녀와서 말이 없으면 '힘든 일이 있었겠구나'라고 짐작한 것이었다. 남편이 조용히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지 않겠구나'라고 단정 한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내가 보고 들은 몇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미리 결론짓는 행위였다.

나는 이것이 특별한 능력이라고 믿었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며 이것이 사실은 나의 경험과 편견, 그리고 불안감이 만들어낸 오류였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사람을 '좋다'와 '나쁘다'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이원론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로 인해 상대방의 감정이 가지는 복잡함이나 상황의 다층적인 배경을 무시하곤 했고, 이는 곧 오해와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내가 믿은 해석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그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만을 골라 기억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독심술'을 고치기 위한 나의 심리 요법: 직면과 확인

교수님의 “심리학은 과학이다”라는 한 마디로 인해, 나는 의식적으로 이 오랜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사용한 심리 치료기법은 '인지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 과 현실 검증(Reality Testing)'을 나에게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이 요법들은 비합리적인 생각이나 인지적 오류를 찾아내고, 그것이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검증하며, 더 합리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방법론적인 접근>


1. 자동적인 생각 멈추기:

‘저 사람은 지금 이럴 거야'라는 자동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생각을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이 생각은 정말 사실일까?’ ‘혹시 나의 편견이나 과거의 경험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2. 확인이라는 질문 던지기:

나의 지레짐작을 하나의 가설로 보고, 그 가설이 맞는지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질문을 던졌다.

아들이 힘없이 들어올 때, 섣불리 단정 짓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엄마가 보기에 힘들어 보이는데, 혹시 무슨 일 있었니?”


3. 경청하고 공감하기:

대화 과정에서 상대방의 눈빛, 표정, 말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 '독심술'이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의 눈빛은 단순히 피곤함 때문일 때가 있었고, 남편의 침묵은 그저 생각할 것이 많아서였다.

때로는 내 지레짐작이 맞아떨어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상대방이 이미 보낸 수많은 비언어적 단서들을 무의식적으로 읽어낸 결과였을 뿐, 예지력이나 독심술 같은 특별한 능력은 아니었다.


오해의 껍질을 깨고, 진정한 나를 마주하다

이렇게 자동적 사고가 들 때마다 확인하는 과정은 나에게 깊은 혼란을 가져왔다.

그동안 내가 독심술을 가졌다는 믿음은 나의 자아 개념(Self-concept)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흔들리자, 나는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하지만 심리학 공부는 그 혼란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독심술을 가졌다는 믿음은 나의 허상이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자 노력하는 따뜻하고 공감 능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레짐작으로 오해하고 단정 짓는 불완전한 나 대신, 직접 대화를 나누고 사실을 확인하며 진정한 공감을 시도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나의 경험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인지적 오류를 범하며 타인을 오해하거나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이러한 오류를 직면하고 확인해 나간다면, 누구든지 더 진실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맞히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대신, 함께 알아가고 질문하며 이해하고 연결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랫동안 믿어왔던 나만의 해석 방식을 내려놓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앞으로 더 진실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용기 있는 첫걸음이었다.




keyword
이전 04화마음을 읽는 기술 대신 과학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