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축 이야기. 17

내외담

by Atticus


여자와 남자의 공간.



몇 년에서 유행했던 유교걸과 유교보이를 기억하시나요? 이효리의 유고걸을 빗대어서 아주 보수적인 여성이나 남성을 뜻하는 신조어로 쓰였습니다. 유교 하면 조선시대였고, 조선시대는 유교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이 유교는 우리 전통건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늘은 유교의 예법으로 인한 여자와 남자의 공간 분리, 그리고 그 공간을 구분 짓는 아주 작은 담 하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습니다. 고려 말,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신진사대부는 결국 고려시대를 뒤엎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가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국가이념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의 시작과 더불어 바로 유교 사회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민들은 여전히 불교의 영향 아래 다양한 신앙이 바탕이 되어 있었으므로, 조선 초기에는 유교가 잘 적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484년(성종 15)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유교가 사회 전반에 법제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유교의 법제화는 정치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주자가례>의 보급을 통해 당대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규정이 이뤄지게 됩니다. <주자가례>에 기초한 '종법제' 즉 장자가 가족을 잇는 것이 조선시대 가족제도의 근간이었으며, 가족 윤리를 기반으로 한 조선 사회의 규범적 체제를 지탱시켜 준 중요한 원리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자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고, 가부장적인 사회가 되었으며, 그만큼 여성의 지위는 낮아지게 됩니다.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여성의 지위는 남성 못지않았으니, 100년 사이에 완전히 사회가 뒤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생긴 것이 '내외법'입니다. 즉 모르는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이며, 「예기(禮記)」 에는 "예는 부부간에 서로 삼가는 데서 시작된다. 집을 지을 때에 내외를 구분하여 남자는 바깥에 거처하고, 여자는 안쪽에 거처하며, 문단속을 철저히 한다. 남자는 함부로 내당에 들지 않고, 여자는 밖에 나가지 아니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로 인해 주택에서도 집을 지을 때 남녀의 공간이 엄격하게 구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의 공간은 안채, 남자의 공간은 사랑채가 되었고, 여자의 공간인 안채는 공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여 감추어지고 폐쇄적인 공간이 되었고, 사랑채는 바깥쪽에 위치하여 개방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통건축 중에 양반집을 방문해 보시면,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채 좋고 당당한 건물은 사랑채 건물이고, 그 건물을 지나 작은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만 보이는 건물은 안채가 됩니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중기 이후 건물은 다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tempImage0GAGen.heic 일두고택. 안채를 가기 위해서는 대문채에서 사랑채 옆 중문을 지나, 또 하나의 중문을 지나야 갈 수 있다. 그리고 안채는 가장 안쪽에, 여러 건물에 둘러싸인 폐쇄적인 공간을 가진다
tempImagefJmJfl.heic 일두 고택. 대문채를 열고 바로 보이는 저 위풍당당한 건물이 사랑채이다.




이렇게 안채를 주택의 안쪽에 위치시키고 주변을 건물과 담으로 구획하여 내외를 구분시키고는 그래도 부족했는지 또 하나의 장치를 만들어 놓습니다. 제가 이 글을 시작할 때 남녀의 공간이 구분되고, 그 공간을 구분 짓는 아주 작은 담이 생긴다고 하였는데, 그게 바로 '내외담'입니다. 이름조차도 내외법을 따라 내외담으로 지은 만큼 남녀의 공간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어쨌든 안채에서도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려면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을 열 때 안채가 보이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내외담은 물리적으로 공간을 정확하게 구분 짓는다기 보다는, 시선을 차단함으로써, 이 안은 바깥에서 보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공간 차단인 것입니다. 눈길조차 차단시키려고 하다니, 정말 엄격한 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외담은 모든 건물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외담을 두지 않더라도, 나무를 이용해 판벽으로 만들기도 하며, 꽃 등으로 꾸민 화담을 두는 방식으로 내외를 구분합니다.



보은 선병국가옥.jpg 선병국가옥. 안에 보이는 건물이 안채이며, 안채를 가리기 위해 내외담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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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생가 내 감고당. 인쪽 사진을 보면 문이 열려있는데도, 안쪽이 안보이는데, 판벽을 이용해 시선을 막았다.




하지만 유교국가인 조선시대에서, 장자를 낳는 것이 최고의 효도였고, 효도는 유교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덕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기는커녕 시선도 둘 수 없는 상황이라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간을 정해놓거나, 나름대로의 수신호를 만들어놓기도 하고, 집 안에 비밀통로를 두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한 집에서 부부가 만나기 위한 비밀통로라.. 참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픈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 제도와 관념이 무섭구나라는 생각도 들네요. 마지막으로 그 "비밀통로"라고 추정되는 사진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P20200507_144545943_5783F705-B766-4C76-B836-6165FF14B8BD.JPG 건재고택. 저 가운데 있는 작은 문이 "비밀통로"라고 추정되는 문입니다.





*글 쓰는데 도움받은 책과 논문


문화재청, 『한국의 전통가옥 기록화보고서 - 함양 일두고택』,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