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얼마 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전현무 씨가 나왔습니다. 이사를 하고 싶다고 집을 알아보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원하는 집은 뭐냐면은 프라이빗한 텃밭 같은 거 가꿀 수 있는 마당 같은 거 있고.." 라며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알아보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 중에 은퇴 후 꿈꾸는 삶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세대에 들어서는 그런 마당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은 좀 줄어든 편이죠. 아마도 아버지 세대까지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고 우리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서였을 텐데요. 그러면 도대체 마당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 었을까요??
우리 전통건축, 특히 조선시대 주택은 기본적으로 마당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마당도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규모가 있는 양반집을 기준으로 보면 안채의 앞에 위치하고 있으면 안마당, 사랑채 앞에 위치하고 있으면 사랑마당, 그리고 사당 앞에 있으면 사당마당, 행랑채 앞에 있으면 행랑마당 이런 식입니다. 즉 다양한 건물이 있고, 각 건물은 각자의 마당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당은 건물 혹은 담장으로 인해 구획이 나눠져 있습니다. 즉 마당이라는 존재가 정확하게 인식이 되었다는 것이죠. 이건 서민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채 한 건물만 있는 집이라도 담장이 있고, 그 앞에 마당이 있었습니다. 즉 전통주택과 마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입니다.
제가 <우리 건축 이야기. 9 확장에 대하여> 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전통건축은 보 방향, 즉 건물을 바라보고 건물 앞뒤로 확장에 제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리 방향, 즉 건물을 바라보고 건물 좌우로는 무한 확장이 가능하죠. 그런데 좌우로 확장은 어느 정도 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확장을 하지 않습니다. 공간적으로 불합리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추가 공간이 필요하면 ㄱ자로 꺾는데 이 마저도 길게 나오지는 않고, 더 이상의 공간이 필요하면 집을 한 채 더 짓습니다. 이걸 '채분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공간이 생기게 되는데, 건물의 규모가 작은 대신 마당을 이용해 공간을 확장한 것입니다. 즉 마당은 외부이지만, 건물의 연장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 국가로, 유교적인 예제가 주택에도 적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남녀의 공간이 엄격하게 구분이 되었는데, 여자의 공간은 안채, 남자의 공간은 사랑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공간인 안채는 공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여 감추어지면서 폐쇄적인 공간이 되었고, 사랑채는 바깥쪽에 위치하여 개방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안쪽에 위치한 안채와 바깥쪽에 위치한 사랑채에 인해 내부에 마당이 생기는 게 바로 안마당이며,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마당에 가장 근접한 이미지가 바로 이 안마당 일 것입니다. 실제로 안마당에 들어가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로 인해 아늑하고, 안정적이며, 포근한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가을에 햇살이 마당으로 들어오면 따스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건 안채에 포함된 공간이라 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택뿐만 아니라 궁궐 건축이나 불교 건축, 유교 건축도 마찬가지로 여러 채로 건물군이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마당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말입니다. 해외에서 여행을 온 여행객이 우리나라 정궁인 경복궁에 가서 정전인 근정전을 보고 너무 실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이 너무나 왜소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훨씬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보다가, 근정전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근정전은 근정전 바로 앞에서 볼 것이 아니라, 근정전이 시작하는 문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외국의 건축은 재료와 구조적인 이유로 큰 건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리고 그 건물 안에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위에서 말했듯이 재료와 구조적인 제한으로 인해 큰 건물을 짓는 것보다 여러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단일 건물만 보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정전이라는 공간은 근정문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행랑채를 거쳐 근정문까지, 마당을 포함한 공간으로 봐야 합니다. 이건 <근정전진하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전인 근정전은 작은 의식을 치를 때는 건물 안에서 했지만, 큰 의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는 마당에 확장을 해서 행사를 했던 것입니다. 즉, 근정전 마당까지도 근정전의 공간이라고 봐야 합니다.
불교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야단법석이라는 고사성어가 어떻게 나온 건지 알고 계신가요??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나라의 종교, 즉 국교였습니다. 그러니 아주 많은 수의 사찰이 있었고, 그 사찰에서 하는 행사도 많았겠으며,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겠지요. 그래서 불교 행사가 열렸을 때는 실내에서 하지 못하고 야외에서 진행을 했을 것입니다. 야단(野壇)은 바깥에 설치한 단을 말하는 것이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것으로, 마당에 단을 설치하여 불법을 폈던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사찰의 마당은 불전의 공간이 확장되어 사용된 것입니다. 이렇게 불전의 공간이 확장돼서 사용하는 건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부처님 오신 날에 사찰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마당에 의자가 가득 차서 사람들이 앉아 있고, 스님이 건물 앞에 셔 서서 불법을 전하게 계십니다. 이게 현대판 "야단법석"이겠네요.
이쯤 되면 진짜 마당의 민족이라 불러도 될 것 같지 않나요?? 이러니 우리 민족은 마당 DNA가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생활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그 향수가 더 할 수밖에 없겠지요. 예전 MBC에서 했던 프로그램 중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을 아시나요? 제목이 "마당 깊은 집"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625 전쟁이 끝난 후 전후에 사는 피난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주인공이 세를 들어 사는 집이 마당 깊은 집입니다. 부잣집을 표현하는데 마당이 깊었다는 표현을 쓴 것이죠. 마당이 크고 넓은 게 어떤 의미였는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마당이 있었던 단독 주택에서 살았던 짧은 시기가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 저도 은퇴 후 꿈꾸는 삶이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글 쓰는데 도움받은 책과 논문
문화재청, 『한국의 전통가옥 - 정온선생 가옥』,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