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와 장영실의 끝장 토론 과연 승자는?
강녕전 옆 부속실의 공기는 탁했다.
며칠째 닫혀 있던 문틈으로 새어 나가는 것은 묵은 먹 냄새와 식어버린 차 향기,
그리고 임금의 깊은 한숨 소리뿐이었다.
방바닥에는 값비싼 고려지가 발 디딜 틈 없이 깔려 있었다.
종이마다 먹으로 그린 기괴한 도형들이 가득했다.
어떤 것은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았고, 어떤 것은 부러진 나뭇가지 같았다.
소리의 뼈대인 자음(ㄱ, ㄴ, ㅁ, ㅅ, ㅇ)을 세우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뼈대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할 모음의 운용에서 막혀버린 것이다.
“아니다, 이것도 아니야!”
이도가 붓을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먹물이 튀어 붉은 비단 자락을 검게 물들였다.
희성은 옆에서 마른침만 삼켰다.
하늘(ㆍ), 땅(ㅡ), 사람(ㅣ)이라는 세 가지 재료는 정해졌다. 문제는 ‘조합’이었다.
“전하, 이론상으로는 완벽합니다.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로 모든 소리를…”
“그 조화를 어찌 종이 위에 구현한단 말이냐!”
이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늘을 땅 위에 두자니 글자가 너무 길어지고, 옆에 두자니 사람이 설 자리가 없지 않으냐!”
머릿속에선 우주의 이치가 휘몰아치는데,
고작 네모난 종이 조각이 그 거대한 뜻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책상머리에서의 씨름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가죽 앞치마를 두른 사내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상의원 별좌 장영실이었다.
그의 손톱 밑에는 검은 기름때가 끼어 있었고, 얼굴에는 땀과 먼지가 얼룩져 있었다.
“전하, 소신 영실이옵니다. 간의대 공사 진척 상황을 보고 드리러 왔다가… 고성이 들려 결례를 무릅쓰고…”
장영실의 시선이 방 안의 난장판을 훑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귀한 종이들을 이리 허투루 쓰시다니요.”
“지금 종이가 문제냐!”
이도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소리의 이치가 막혀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장영실은 임금 앞이었지만, 천성이 기술자인지라 비효율적인 꼴을 두고 보지 못했다.
그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거기엔 ‘ㆍ’와 ‘ㅡ’가 어색하게 겹쳐진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장영실이 종이를 들고 한참을 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지금 글자를 만드시는 겁니까, 아니면 부적을 그리시는 겁니까?”
“뭐라?”
“소신이 보기엔 꼭 고장 난 자격루의 톱니바퀴 같습니다.”
장영실이 손끝으로 종이 위를 톡, 두드렸다.
“서로 맞물리지가 않아서 삐걱대는 꼴 말입니다.”
희성은 이도의 눈치를 살폈다. 감히 임금의 고뇌를 고장 난 기계 취급하다니.
하지만 이도는 화를 내는 대신 장영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톱니바퀴… 그래. 맞물려야지. 소리도 기계처럼 매끄럽게 돌아가야 하거늘.”
“방 안에서 붓만 잡고 계시니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장영실이 밖을 가리켰다.
“붓끝은 너무 섬세하여 대담한 이치를 담기 어렵습니다. 나가시지요.
좁은 책상이 아니라, 넓은 데서 해보시지요.”
부속실 밖 뒷마당은 휑한 흙바닥이었다. 달빛이 얇게 내려앉아 있었고, 찬 공기가 뺨을 스쳤다.
장영실은 짚신 발로 바닥을 쓱쓱 문질러 평평하게 골랐다.
그러고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튼튼한 나뭇가지 두 개를 주워 이도와 희성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자, 여기가 전하의 새 종이입니다. 찢어질 염려도 없고, 먹을 갈 필요도 없습니다.”
장영실이 덧붙였다.
“마음에 안 들면 발로 문대버리면 그만입니다.”
이도는 어이없다는 듯 나뭇가지를 받아 들었다.
왕의 체통이 말이 아니었으나, 찬 밤공기를 쐬니 막혔던 가슴이 조금 뚫리는 듯했다.
“좋다. 어디 한번 해보자.”
이도는 용포 자락을 걷어 올리고 흙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순간 희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조선의 임금이 흙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이건 진짜 레전드 장면인데.’
장영실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자, 전하. 하늘(ㆍ)이 땅(ㅡ)을 만납니다. 어디에 두시겠습니까?”
이도가 나뭇가지로 바닥에 힘주어 가로선을 그었다. 쭈욱. 흙이 밀려나며 선명한 ‘ㅡ(땅)’가 생겼다.
“하늘은 땅 위에 있는 법. 마땅히 위에 찍어야지.”
이도는 가로선 한참 위에 점을 쿡 찍었다.
“……”
흙바닥에 그려진 모양은 글자라기보단, 그냥 멀리 떨어진 점과 선이었다.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사이처럼.
“너무 멀지 않습니까?” 희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가까이 붙이면 되지.”
이도가 다시 바닥을 발로 문지르고, 이번엔 선 바로 위에 점을 찍었다. ‘ㅗ’ 모양이 되었다.
“보아라. 하늘의 기운이 땅 위로 솟구치는 모양새다. 양(陽)의 기운이지.”
이도는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장영실이 고개를 저었다.
“전하, 그렇게 쓰면 붓이 힘들어합니다.”
“붓이 힘들어해?”
“예. 글씨를 쓸 때 붓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것이 순리입니다.”
장영실은 말끝을 단단히 박았다.
“헌데 저 모양은 붓을 억지로 위로 치켜올려야 합니다. 한두 자는 몰라도 문장을 쓰다 보면 팔목이 시큰거릴 것입니다.”
기술자의 관점이었다. 이치도 중요하지만 실제 사용할 때의 ‘효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영실이 이도의 손에서 나뭇가지를 홱 낚아챘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공학자의 눈에는 임금도 그저 비효율적인 설계를 고집하는 의뢰인일 뿐이었다.
“보시지요. 붓은 물 흐르듯 가야 합니다.”
장영실이 흙바닥에 가로선을 긋더니, 망설임 없이 그 아래쪽으로 나뭇가지를 툭 떨어뜨리듯 점을 찍었다.
순식간에 ‘ㅜ’ 모양이 나타났다.
“땅(ㅡ) 아래로 하늘의 씨앗(ㆍ)이 내려와 박히는 겁니다.”
장영실이 말하자, 희성은 이상하게 그 표현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붓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지지 않습니까?”
이도의 눈이 커졌다.
“땅 아래로 하늘이 내려와? 그것은 음(陰)의 이치가 아니냐!”
“음이면 어떻고 양이면 어떻습니까.”
장영실이 어깨를 으쓱했다.
“쓰기 편하고 보기 좋으면 그만이지요.”
그는 한 박자 쉬고, 마지막 한 마디를 박았다.
“기계를 만들 때도 보기 좋은 위치보다 힘을 잘 받는 위치에 기둥을 세우는 법입니다.”
그 말에 이도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성리학적 우주관에 갇혀 ‘하늘은 무조건 위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투박한 기술자는 단숨에 그 틀을 깨버렸다.
“… 그렇구나.”
이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하늘이 꼭 위에만 있을 필요는 없어. 땅에 스며들 수도 있는 것이지.”
이도는 나뭇가지를 다시 빼앗아 들었다. 그의 눈에 다시 광기가 서렸다.
그는 미친 듯이 흙바닥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가로선을 긋고 위에 점을 찍어보고(ㅗ), 발로 지우고 다시 아래에 찍어보고(ㅜ).
세로선을 긋고 오른쪽에 점을 찍어보고(ㅏ), 다시 지우고 왼쪽에 찍어보고(ㅓ).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달빛 아래, 조선의 임금이 흙투성이가 된 채 바닥을 기어 다니며 막대기질을 해대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희성은 웃음이 날 듯 말 듯한 얼굴로 참고 있었다. 웃으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고, 안 웃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희성아! 보아라!”
이도는 땀범벅이 된 얼굴로 환희에 차 외쳤다.
“하늘(ㆍ)이 동서남북 어디에 붙느냐에 따라 소리의 성질이 바뀐다!
오른쪽과 위는 밝고 가벼운 소리가 나고, 왼쪽과 아래는 어둡고 무거운 소리가 난다!”
희성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책상머리에서는 절대로 깨닫지 못했을, 몸으로 부딪쳐 알아낸 이치였다.
희성은 이도가 그려놓은 수많은 점과 선들 사이에서 나뭇가지로 두 가지 모양을 꾹꾹 눌러 테두리를 쳤다.
사람 옆에 하늘이 붙은 모양(ㅏ)과, 땅 아래로 하늘이 내려온 모양(ㅜ)이었다.
“전하, 특히 이 두 가지가 가장 안정적입니다.”
“붓의 흐름도 자연스럽고, 다른 자음들과 합쳐졌을 때 균형도 맞습니다.”
이도는 잠깐 멈춰 ‘ㅜ’ 모양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흙바닥에 깊게 팬 그 모양이 마치 조선의 땅에 박힌 주춧돌처럼 느껴졌다.
“… 땅 아래로 점을 찍으니, 글자가 뿌리를 내린 듯 단단해 보이는구나.”
이도는 쭈그리고 앉은 채로 장영실을 불렀다.
“장영실.”
“예.”
“네놈이 이겼다.”
희성이 흠칫했다. 이 말이 칭찬인지 처벌인지 알 수 없어서였다.
이도는 이어 말했다.
“좁은 방구석에 갇혀 있던 내 붓을 네가 이 넓은 흙바닥으로 해방시켰구나.”
이도는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장영실의 어깨를 두드렸다.
장영실은 멋쩍은 듯 코 밑을 문질렀다. 기름때와 흙먼지가 섞여 그의 얼굴은 더 엉망이 되었다.
“전하— 소신은 그저—”
“그저가 아니다.”
이도가 끊었다.
“이런 ‘그저’가 나라를 살린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세 사람은 흙바닥을 떠나지 않았다.
수백 번 쓰고 지운 흔적으로 뒷마당은 흡사 멧돼지가 파헤쳐놓은 밭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 난장판 속에서, 조선의 소리를 담아낼 가장 효율적인 그릇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탁상공론이 아니라,
치열한 흙바닥의 격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