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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엄마의 대치동 입시 탈출기 4

by 마음리본

친구 따라 대치동 간다?


옛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의미를 찾아보니 네이버 AI가 이렇게 말해준다.


친구가 좋아서 어디라도 함께한다는 뜻과,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좋지 못한 결과를 얻는 경우를 가리키기도 함.


헉, 찔린다.

내가 대치동으로 이사한 건 순전히 저 마음이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된다는 압박감.

내 아이를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사교육 현장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마음..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저 마음 하나로 학군지 이동을 한다.

자식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중요한 건 내 아이가 그 환경에 맞을지 여부는 잘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아들 둘이 환경을 옮겼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적응력이 좋은 아이들이니 잘하려니 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겪었을 자존감 하락, 극심한 경쟁 스트레스를 생각지 못했다.

아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그 정도쯤은 당연히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대치동 초등학교에 근무하며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전학시키는 부모들을 많이 본다.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는 뭐든 잘하는 아이로 통하며, 자존감도 높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로 가득 찼던 아이들이

대치동에 온 후 자기보다 잘하는 게 너무 많은 아이들에 둘러싸여

열등감과 비교의식으로 힘들어하는 걸 많이 보았다. 그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하며 살아남은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다. 성공한 아이의 비율은 훨씬 적다.


하지만, 두 가지 경우 모두 아이 마음에 생채기는 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쩌면 나의 어리석은 선택을 보며,

이런 사례도 있다는 걸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내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아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대치동에서 의대 가고, 서울대 간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태권도를 사랑한 아이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왔다.

운동 잘하고, 어디서나 인싸 기질이 다분한 둘째는 전학 온 후에도,

이전 학교 친구들을 꽤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물론 학교는 매우 빠르게 적응했다.

여전히 주위로 친구들이 모여드는 인싸였다.


워낙 태권도를 잘하고 좋아해서

태권도 시범단을 했었다.

그러다 이사 온 동네에서는 제대로 된 태권도 학원이 없었다.

대치동은 태권도 학원 같은 게 활성화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다른 학원 보내기 바빠 태권도 학원에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값은 비싸고, 애들은 없다.

물론 태권도 학원이 없는 곳이야 없지만

이전 동네만큼 시범단이나 선수 육성 같은 전문 프로그램을 찾기 어렵다.

태권도 선수를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아들이 꾸준히 좋아하고 잘하는 게 태권도였는데

그걸 제대로 못하게 된 게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게다가 둘째는 대치동 학원들에 영 적응을 못했다. 원체 구멍이 많아 개별적으로 꼼꼼하게 봐주는 게 맞는 아이였다.

대형학원의 시스템 자체가 잘 맞지 않았다.

대치동 학원들은 다 그렇진 않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잘하는 아이 위주로 끌어가는 형태이다.

게다가 학원을 보내놓고 내 일이 바빠 아이에게 신경을 못 쓰는 워킹맘에게

딱 학원 전기세, 월세 내주는 호구가 되기 쉽다.


바쁜 엄마는 개별로 봐주는 학원을 일일이 찾기도 어렵다.

원체 학원이 많다 보니 개별로 봐주는 학원이 있지만

정보가 부족하니 알 길이 없다.

인터넷이나 카페에 떠도는 정보도 신뢰가 안 간다.

주위 친구들은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도생할 뿐.

정보를 잘 알려주지 않는 것도 있지만,

알려줘도 내 아이와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둘째는 이런저런 학원을 전전하다

소규모로 아이들을 그룹으로 봐주는 학원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코로나 때라 학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는 환경이었다.

초등 때는 나름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운동도 신나게 하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게임에 빠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 중학생이었던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온라인 세상에서 하루 종일 지낼 때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3달에 1개 정도로 닳던 운동화가 6개월이 지나도 새하얄 정도였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날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래도 중학교까지는 공부를 하면 성적이 나오는 과목도 있었다.

고등학교는 범위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공부 내공이 없는 아이들은 본인들 기준에서 열심히 했다고 해도

성적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중학교 때 질리도록 게임을 해서인지

고등학교 가서는 그토록 좋아하던 게임을 거의 끊었다.

그래도 쉽게 공부 습관이 잡히진 않았다.


-- 중학교 때 게임을 많이 하면 도파민에 중독된 뇌가

활자화된 정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한다.

이를 돌이키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아들은 도무지 공부 습관이 잡히지 않았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막막해하여

엉덩이 힘이라도 기를 겸, 관리형 독서실을 보냈다.

스마트폰이며 공부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한참 관리형 독서실이 유행이었다.

둘째는 본인이 잘하는 게 무언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목표가 없으니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잘 잡히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토록 자신감 있게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하며 눈을 반짝였던 아들이

목표를 잃고 갈 길을 잃어버린

흐리멍덩한 눈이 되었다.

전학을 오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지금까지 태권도를 하며,

태권도로 입시를 준비했을까?

(초 6 때 4품을 땄으니, 전학을 오지 않았다면

아마 태권도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빛을 잃은 아이들


많은 아이들이 초등 저학년까지만 해도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눈을 반짝인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갈수록

고유의 빛깔을 잃는다.

공부라는 하나의 기준에 강요당해

무색무취한 사람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만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이라는 가치관을 강요받는다.


교육, 이대로 괜찮을까?

비단 부모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왜? 모든 것이 입시로 평가받으니까.

그러니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열등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는

학교를 떠나고 있지 않은가?

이게 맞는 걸까?


아이를 다 키우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대학이 다가 아닌데,

다인 것처럼 강요당하고

불행감을 느끼는 청소년들...

안쓰럽고 미안하다.

나부터 반성한다.


- 5화에 계속, 금요일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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