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늘 존재하고야 마는 그 분들에 대하여.

어느덧 20년차 사회복지사 #1

by 제이비

두서가 없고, 맥락도 없으나

누군가는 궁금해할 수 있고, 어찌해야할지 막막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간의 경험을 남겨 둡니다.


복지관은 누구나 드나드는 공간 입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문을 통해 별의별 인생의 모양들이 걸어 들어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조용히 삶의 무게를 견디는 분들도 계시지만,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이른바 '빅마우스'들도 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현장에 있으면서 본의아니게 이런 분들을 숱하게 마주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호통으로, 때로는 교묘한 뒷말들로 직원들을 지치게 하고, 선량한 이용자들을 자신들의 작은 왕국 안에 가두려 합니다. 공동체의 약속보다는 자신의 기분이 우선이고, 복지관이 공공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안방인 양 군림하려 들기도 합니다. 신입 시절에는 이런 분들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혹은 얼굴을 붉히며 맞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분들의 행동 이면에 깔린 결핍을 조금은 차분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복지관 밖의 세상에서 그들은 아마 힘없는 약자이거나, 목소리를 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투명 인간에 가까운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대접받지 못했던 경험이, 복지관에 들어와 왜곡된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지관은 자신이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무대인 셈입니다.


그렇다 해서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이럴때 사회복지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호한 친절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과거 우리는 이용자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무리한 요구도 웃으며 들어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빅마우스에게 원칙 없는 수용은 그들의 권력을 키워주는 먹이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존중하되, 그 행동에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합니다. "어르신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 공간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곳이기에 그 행동은 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판단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에너지'를 전환해 주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빅마우스들은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넘치고, 사람을 모으는 재주가 있는 분들입니다. 이 활력이 갈 곳을 잃어 불평과 선동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물길을 터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반장님처럼 리더십 있는 분이 식당 질서를 잡아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라며 그들에게 공식적인 '감투'와 '책임'을 부여합니다. 골목대장이 완장을 차면 누구보다 규율을 잘 지키는 모범생이 되기도 하듯, 그들의 인정 욕구를 공동체를 위한 에너지로 치환해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늘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적으로 두기보다 파트너로 끌어안으려는 노력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하는 다수'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빅마우스의 목소리가 커지면, 대다수의 선량한 이용자들은 조용히 자리를 피하거나 복지관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목소리 큰 한 사람을 달래기 위해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조용히 도움이 필요한 열 사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합니다. 다수의 힘으로 빅마우스의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희석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특정인의 목소리가 아닌, 서로를 배려하는 다수가 힘을 얻을 때 생겨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을 대하는 일입니다. 빅마우스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또다시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감정에 휩쓸려 그들을 미워하거나 피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어쩌면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지역을 함께 변화시키거나, 끝까지 함께할 힘이 있는 분들은 이런 기질이 있는 분들중에 많을 확율이 높습니다. 그러니 쉬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외로움은 이해하되 무례함은 둥글게 깎아내고, 에너지는 보존하되 방향을 돌려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힘들어도 그 외에 다른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 작은 변화의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속에 일어나길 바랍니다. 오늘도 수고많으셨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 번의 목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