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는 열정

by 용혀기

커다랗고 하얀 천 위에다가 불빛을 비추면 그림이 움직이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마치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영화라고 하는 것은,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섬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육지에서 영사기를 가지고 들어오는 영화사인지 아니면 극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장사치가 있었던 것은 기억난다. 그리고 학교에서 교육 차원에서 보여준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영화는 교육적인 면에서 굉장한 효과가 있었던 영화라고 생각된다.

교육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빛에서 퍼져나온 그림의 움직임을 보면서 스토리 보다는 신기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들이 더 깊었다.

남북 간의 이념대결에 대한 반공사상이 아직은 팽배하던 시절에 아무것도 모르고 가르쳐 주는 대로 간첩 신고는 113을 112보다 많이 외우고 다녔던 시절이었기에 반공영화는 좋은 시청각 교재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전기도 없던 시절 안방과 부엌 사이에 초코지 불을 켜놓고 살았다고 하면 내 또래의 친구들도 거짓말이라고 타박한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굳이 이를 확인시키는 수고까지는 하지 싶지 않다.

동네에서 자발적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공급하기는 했지만 시끄럽기 그지없었고 그것도 9시까지만 이었다. 그때 우리는 밤눈이 참 밝았던 것 같다. 희미한 불빛에서도 할 수 있는 행동을 다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어쩌면 살고자 했던 인간의 열정이 환경을 극복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적응력을 우리는 타고났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우리에게 꿈을 꿀 수 있게 만든다.

열정의 씨앗은 경험에서 비롯된 꿈과 호기심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열정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적응하려는 에너지원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이미 잠재 되어있는 열정을 꺼낼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기회를 붙잡기 위한 열정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부모님의 그늘 밑에서 세상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간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옆으로 지나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에 열정의 그물을 설치 해야 한다.

세상은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진리를 진즉에 알았다면 그물 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때 우리의 시선은 아직 풀밭을 기고 있었고 그 풀밭 너머의 세상을 동경하기 이전에 지금 보이는 세상에 대한 적응이 먼저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여느 날처럼 우리는 산속의 놀이터를 무대 삼아 전쟁 놀이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점령하지 않았던 고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삼각형의 작은 깃발들이 능선을 따라 박혀있는 것들을 보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간첩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지서로 달려갔다. 간첩 신고를 하러 간 것이다.

결국 한전에서 전기공사를 위해서 철탑과 전봇대의 동선을 표시해 놓은 것이었음을 알았다. 지금에야 그런 장면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그땐 12년 인생에 처음 본 광경이었고 처음으로 내 안에서 명령하는 것을 수행한 것이었다.

그래도 칭찬받으면서 그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그렇게 우리 섬에도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대문명의 혜택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기가 들어옴으로써 저녁마다 챙겨야 했던 초코지에 기름 채우는 일을 안 해도 되었고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타박은 들었지만, 숙제를 9시 넘어서 해도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리어카에 텔레비전을 싣고 오셨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고 낮에는 열쇠로 잠가 놓기는 했지만,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텔레비전 앞에는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타잔'하고 '전우'라는 프로그램은 아직도 내 마음속엔 최고의 작품으로 남아있다. 그 프로그램 방송 시간이 소에게 풀을 뜯게 할 시간과 겹치는 것만 빼고는...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알 수 없는 세상의 모습과 이야기들은 세상과의 소통을 향한 나의 열정의 방향을 잡아주기 시작하였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볼 수 있었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가 수집되기 시작했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옆 동네에서 살고 계시는 담임 선생님이 뭐라고 주절거렸던 이야기들이 내가 그리는 세상과 매칭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마음속에 뭔가가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장래 희망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때쯤이었고 그 생각은 크면서도 바뀌지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나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았거나, 그때의 상황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미래였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했다고 해서 나의 생활이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학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입기 위해 자신의 신장보다 크게 맞춰 입은 시커먼 교복이 잠시 잠자고 있던 열정을 불러내기는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중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부터 생각의 범주가 또 한 번 용트림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는 도시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독립을 의미하였다.


지금의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시절에서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밖으로의 나가야 한다. 그것도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했다.

난생처음으로 밟아 본 아스팔트의 느낌은 신작로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고 50원이라고 적혀있는 조그만 종이 조각만 있으면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챙겨야 할 것은 자취생활 즉 독립생활에서 필요한 삶에 대한 열정이었다. 선생님이 되고픈 열정과는 또 다른 열정이었다. 나도 이 거대한 세상이라는 괴물과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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