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훈련(2)

등으로 느끼는 을지훈련

by 장판

지금 속한 5급 단위 공공기관의 을지훈련은 응소와 청사 일박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간략하다. 고마운 일이기도 한데, 다만 특이한 점은 야간에 평상시에는 느껴볼 수 없는 특이한 신체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조별로 하루씩 청사를 지키는데 작은 조직이다 보니 직원 전용 휴게실이 없어 하룻밤 용역사 직원들의 휴게실에 신세를 져야 한다. 남의 휴게실을 빌려 쓰는 것이니 팀원 모두에게 조금 씩은 불편하고 어색하겠지만 나에게 그보다 큰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진동. 다시 말해 미세한 전율.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일하는 공공기관은 관광지 인근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해 있고 지하로는 지하철 2개 노선이 교차해 지나는 곳이다. 평상시 지하철 진동이나 소음 따위는 기껏해야 출퇴근길 지하철 역사와 이어진 통로를 오가거나 개찰구 카드를 찍을 때 정도지만 을지훈련 1박 동안은 달랐다.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지난해 속한 곳에서 처음 을지훈련을 했을 때 나는 나름 호젓함을 기대했다. 일하자고 모인 일터에서 일박은 절친과 수다 떨며 밤을 새는 우정 여행이 아니다. 누구와 조가 되건 함께하는 1박 자체가 편치 않은 일인 것이다. 그런데 팀원이 적은 이곳에서는 거의 1인 1조로 응소하게 되어 각자 홀로 청사를 지키며 1박을 하는 상황이었다. 혼자 맞이하는 밤이라니. 하룻밤 지지고 볶는 집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니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기회라 조금 기대를 했다.


정말 시작은 가벼웠다. 오후 6시. 퇴근하는 직원들을 공식(?)환송하고 혼자 슬슬 걸어가 인근 장부식당에서 느지막이 저녁을 먹었다. 딱히 빈 청사로 돌아가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것도 내키지 않아 슬슬 주변을 산책했다. 여느 때처럼 청사 근처에는 관광객들이 즐비했고 핫하다는 소금빵집부터 각종 베이커리들에 먹음직스런 빵들이 저마다 땟깔 나는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관광객들의 틈 사이에서 휩쓸려 돌아다니며 제한된 시간,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이 지나자 슬슬 마음 속 한 구석이 우울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청사로 돌아가 보내야 할 길고 긴 밤과 곧 찝찝함이 도래할 몸 구석구석에 대한 청결 우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겨우 하루지만 샤워를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각오를 다지고 왔던 터였고 때마침 늦은 장마가 긴 꼬리를 거두기 전이라 크게 덥지는 않았다. 잠시나마 인근 공중 목욕탕을 가볼까 생각했지만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느릿느릿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청사로 돌아갔다. 컴컴한 1층으로 조용히 들어가니 당연히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사실 야근 자체도 퍽 오랜만이었던 터라 늦은 시간 혼자 빈 건물에 있는 것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늘 하던 일상 업무조차 손에 잡히지 않아 이런저런 조사를 하며 한 두 시간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내보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고요함과 정적은 얼마간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었지만 조금 사람을 질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21시 십분 전, 의미는 없으나 스스로 정해둔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나는 슬슬 준비해 온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간단히 세면을 마쳤다. 그리고 태블릿 피시와 휴대폰, 충전기를 챙겨 휴게실로 내려갔다. 용역사 직원을 위한 휴게실은 사업장에서 간접 고용한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적 의무 조항 때문이며 규정상 평상시 우리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수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용역사측에 협조로 을지훈련 기간에 한 해 우리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조금 서글픈 현실이었지만 그나마도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반듯이 등을 펴고 누울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청사를 한 바퀴 돌아본 뒤 일찍 자리에 누워보기로 했다. 용역사측에서 사전에 알려준 사항대로 첫 번째 캐비닛에서 이불과 베개를 꺼내 바닥에 반듯이 폈다. 10시가 조금 넘은 이르다면 이른 시각. 등은 붙여 보았지만 남의 자리, 남의 장판, 남의 이불이라 생각하니 숙박업소 이용 때와는 또 다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넷플릭스 시리즈를 이리저리 뒤져보며 얼마간 시간을 보내고 에피소드 한두편을 스킵하는 사이 느릿느릿 또 얼마간의 시간이 갔다. 잠은 전혀 오지 않았지만 불을 끄면 달라질까 싶어 불을 끄고 누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느다랗게 모기 웽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다시 불을 켜는 것도 귀찮아 조금 버텨 보았다. 그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지하철 소음과 함께 등으로 진동이 전해졌다. 아뿔싸. 드문드문 지하철이 다니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고단한 지하철 귀갓길이 한 번, 또 한 번 내 등으로 왔고 사라졌다. 세상에. 그 소음보다 진동이 나를 괴롭게 했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소음이 아닌 진동에 시달리다니. 차 멀미도 비행기 멀미도 배 멀미도 해보았지만 교통수단을 타고 있어 느끼는 진동이나 영향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에서 층간 소음과는 차원이 다른 묘한 괴로움과 짜증이었다. 한 대, 또 한 대, 3호선 지하철은 귀갓길 시민들을 부지런히 날랐다. 한 시간이라도 잘 수 있을까. 이렇게 한 시간도 자지 못한다면 아침은 언제 올까. 오기나 할까. 불안이 일으키는 예민함과 짜증이 밤과 함께 마구 섞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자정이 지나자 진동의 간극은 길어졌다. 거의 사라진 것도 같았지만 그러다 한 번씩 다시 와 짜증을 일으켰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을까? 자야 하는데 곧 을지훈련 마지막 날인데…. 시간이 가고는 있었는지. 잠이 든 것도 같았고 설핏 얕은 꿈 같은 것도 꿨던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뒤 다시 그 진동이 등을 찾아왔다. 드드드드. 주머니속 휴대폰 진동을 1000배쯤 튀기면 그런 기분일까? 다시 분명하고도 기분 나쁜 미세한 외적 움직임이었다. 아침이… 새벽 첫차가 오고 있었다. 내 등을 향해 돌진하는 그 긴 진동으로 을지훈련 마지막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등으로 오롯이 진동을 받으며 빨리 9시가 되었으면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바랐다.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 무진동 내 방 침대로 가서. 오로지 그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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