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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이별예감 Part4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by 임경주


민우가 소율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가다가 멈춰 선 곳은 해운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닭갈비 집이었다.

식당 입구에 모래가 깔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소율이 모래 위에 나이키 발자국을 남기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민우도 뒤따라 들어가다가 소율의 발자국을 밟아본다. 나이키 위로 아디다스가 포개졌다.

머리 위에서는 풍경이 울리고 식당을 가득 메운 뿌연 음식 연기와 함께 부산 사투리가 들려오는데 무슨 이유인지 정겹다. 천안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소율의 직장동료로 보이는 남자들이 소율을 연예인처럼 반기는 모습을 보며 민우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럴 뜻이 전혀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소율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앉았다.

민우는 일부러 고개를 처박고는 전화기를 꺼내 형식과 톡만 나누었다.


너 부산 내려가는 동안 소율이에게 눈알 얘기를 했주었다, 민우가 너를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거 확인했다, 소율이는 분명 너랑 헤어질 마음이 아직 없고 화가 나서 그러는 거니까 서로 진짜 잘하라고 톡을 날리는 형식에게 민우는 아니라고 다 끝난 거 같다고 반박하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민우는 내친김에 톡을 통해 형식에게 별 말을 다 쏟아낸다. 어쩌다 보니 회식자리까지 따라왔는데 여자는 소율이 혼자라고, 유부남으로 보이는 놈부터 시작해 우리 또래로 보이는 놈들까지 남자가 총 다섯 놈인데 다들 속이 시커먼 놈들이다고.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소율이한테 돌아가면서 술을 먹이고 있는데 그 누구 하나 말리지 않고 있다고. 개새끼들이라고.

형식이 점점점을 보낸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민우가 평소보다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소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민우는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 저 인간들 시커먼 속이 훤히 다 보일 뿐이다.


진실게임이랍시고 지금 사귀는 남자가 있냐고 묻고 소율이 없다고 대답하니 그 얼굴에 어떻게 사귀는 남자가 없을 수 있냐며 거짓말이라고 그러면서 벌주를 먹인다. 꼴에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이 흑기사를 자처하고 나선다.


끝났어. 나 광안리 바다나 보고 올라 갈려고.


민우가 톡을 남겼는데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 올라갈 거라고 새끼야. 끊어.


민우가 먹기 좋게 잘 익은 닭갈비는 입에도 대지 않고 소주뚜껑을 따고는 딱 한잔 더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율은 여전히 동료들과 어울려 놀고만 있을 뿐이다. 민우를 끝까지 투명인간 취급한다.

살짝 보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소율의 얼굴에 취기가 살짝 올랐다. 저거 술도 못 마시는 게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까분다고 생각하며 계산을 하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총각 왜 음식을 시켜놓고 한입도 안 먹고 소주만 비우고 가냐고 묻는다.


어머 그 누구야, 윤계상 닮았네. 아니 우리 집 닭갈비 줄 서서 먹는 갈빈데 왜 하나도 안 먹어요?

죄송해요 사장님. 방금 막 천안에서 내려왔는데요. 여자친구가 찾네요. 빨리 올라가야 해서… 소주 잘 마셨습니다.


식당을 빠져나가는 민우의 머리 위에서 풍경소리가 울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택시를 잡는 민우의 뒷모습을 소율이 지켜보고 있다. 여자친구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아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율씨?


직장동료들이 소율의 시선을 따라 식당 입구를 보는 그 때다. 소율이 갑자기 울어 버리자 직장 동료들이 깜짝 놀란다. 진정을 찾지 못하고 계속 우니 동료들은 왜 이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너무 궁금하다.

하지만 너무 서럽게 우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난감할 따름이었다.

소율이 울다가 훌쩍 거리며 전화기를 꺼내 보았다.

형식이 보내온 문자가 있다. 소율이 코를 훌쩍 거리며 확인해 본다.


민우 갔어?

어. 갔어. 이제 오빠도 그만해. 우리 진짜 끝났어.

민우 광안리 간다고 했어.


소율이 잠시 머뭇 거린다.

대답하지 않고 전화기를 가방에 집어넣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앉아만 있다. 눈이 빨갛다. 울음은 멈추었는데 말 한마디라도 잘못 걸면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 같아 직장동료들은 눈치만 보다가 자기들끼리 조용히 술잔을 돌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근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서… 죄송합니다.


소율이 더 이상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만 짓고 있으니 동료들이 몹시 궁금해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시원한 대답도 없다. 그저 죄송하다고만 한다.

소율씨는 먼저 들어 가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회식 분위기가 깨지고, 소율이 정말 죄송하다며 일어나 식당을 빠져나간다.

나이키 모래발자국 위에 아디다스가 포개져 있다. 저 신발 윤계상 아디다스 단화, 소율이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사준 거다.

머리 위에서 풍경이 울린다. 여자친구가 찾는다는 말이 다시 들려온다. 동료들의 소곤거림은 맞은편에 홀로 앉아 있던, 천안에서 왔다던 그 윤계상 닮은 놈을 소환하며 각자 추리에 빠져들고 있었다.

남친이네, 남친.

닫히는 문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소율은 밤거리를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같은 시간, 민우는 광안리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만 피워대고 있다. 소주병 3개가 옆에 자빠져 있다.


소율이 깜박 잠이 들었는데 형식의 문자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다.


소율아. 민우 바다에 빠져 죽어 버린다고 그러더니 지금 너네 집으로 무작정 가서 너 기다릴 거래. 술 엄청 취했어. 이렇게 전하면 나 죽일 거래. 내가 이런 말 했다고 민우한테 절대로 말하지 마.

가지가지한다. 그냥 죽어버리라고 그래. 나 정말 부탁인데 둘 다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어. 둘이 뭐 하는 거야 지금.

아 몰라. 나도 이제 더 이상 너네들 일에 안 껴들 거야. 아무튼 민우 너네 집으로 간대. 너도 일찍 들어가는 게 어때? 남자 다섯이 돌아가면서 여자 하나를 상대로 술 먹이는 꼴 옆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보고 있으면 누가 기분 좋겠어.

뭔 상관인데?

그러지 마라. 지금 죽어버린 다는 놈 겨우 설득했다.

죽을 위인이긴 하간? 쇼하고 있네.

아 몰라 민우 진짜 힘들어해. 그건 사실이야. 그러니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일찍 들어가. 나 이제 연락 안 한다. 끝. 아참 나 말자랑 사귀기로 했어.


헐, 진짜 가지가지한다.

소율도 더 이상 대꾸를 안 하려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문자를 보낸다.


근데 우리 집이 어딘지나 알간?

어 방금 민우가 나더러 자기 집 들어가서 너가 보낸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 찍어주라고 해서 찍어줬는데.

사하구 재송 2동 000-00맞지?


소율이 침대에서 강시처럼 벌떡 일어선다.

자기도 모르게 거울부터 찾아보고 있었다.



이별예감 Part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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