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검(快劍)

봉인의 검

by 임경주



떠돌이 무사 지존보의 자청보검은 봉인되어 있다.

때 묻은 낡은 천으로 검집과 검병(손잡이)이 서로 묶여 있다. 그 단단한 매듭은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번 다시는 검을 뽑지 않겠다는 주인의 절연한 각오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청보검은 세상에 둘도 없는 천하의 명검이다. 그 이름처럼 보라색과 푸른색이 서로 섞여 신묘한 빛을 뿜어내지만 이 나라 형제의 난 이후로 그 빛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자청보검은 마지막으로 아이의 목을 베었다. 아이는 지존보가 모시던 주군의 조카다. 주군의 동생은 형의 자리를 탐내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했다. 그의 어린 아들은 평소 지존보를 잘 따랐다.

검은 살인도구다. 그 어떤 미사어구로 포장해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다. 약자를 돕고 강자를 견제하며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시작과 끝에는 항상 피로 물든 검이 있다. 검은 살인도구다.

이 사실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저항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의 목을 베는 것, 그것은 주군의 명이었다. 동생의 반역 뒤에는 지존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왔다. 베지 않으면 같이 죽는다. 지존보는 목이 떨어진 상태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망울을 잊지 못한다.



구름 따라, 바람 따라 떠돌이 방랑 생활을 이어가던 지존보의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났다. 졸졸 따라다닌다.

“무사님, 제발 저 좀 지켜주세요. 저기 저 높은 산 하나만 넘으면 이모가 있는 객잔이 있어요.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절 지켜주시면 전 무사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평생 수발들게요.”

“너. 그렇게까지 살고 싶은 이유가 뭐야?”

“몰라요. 그냥 죽는 게 무서워서 그래요. 무사님은 안 그래요?”

“몰라… 그딴 거.”

소녀는 북방 오랑캐의 침입으로 초토화된 변방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다. 엄마가 죽기 전, 소녀의 몸을 비밀장소에 숨겨줄 때 말했다고 한다. 살아남으면 이모를 찾아가라고.

지존보는 남루한 옷차림의 소녀가 식당 앞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 불쌍해 먹다 남은 만두를 건네주었다.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아들을 잡아다가 팔아넘기는 무리들의 행패로부터 소녀를 지켜주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인연이 된 것이다.

산을 넘기 전 마을 초입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고 있었다.

지존보가 지붕이 내려앉은 폐가를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대충 잠자리를 살피는데 밖에서 소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에 혼구멍이 나서 줄행랑을 쳤었던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들이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어이 방랑무사. 나로 말할 거 같으면 개방의 권왕 왕손이라 한다. 이 계집애는 어르신께서 데려가야겠다. 돈이 좀 될 거 같단 말이지. 그리고 네놈은 내 동생들이 계산할 게 남아 있다는데?”

“난 졸려서 자야겠는데?”

지존보가 콧방귀를 뀌며 드러눕자, 왕손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자가 부하들에게 공격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폐가 안으로 들어간 부하들의 몸은 들어갈 때 속도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빠져나와 장독대고 마당이고 여기저기 사방으로 날아가 나자빠진다.

“힉?”

신묘한 움직임이었다. 어느새 왕손 앞에 지존보가 나타나 씩 웃으며 꿀밤을 먹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 아파 저절로 눈물이 새 나왔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정신없이 비비는데 한쪽 눈에 번개가 튀었고, 복부에 발끝이 파고 들어와 숨을 쉴 수가 없다. 다음은 턱주가리다.

빠악.

왕손은 턱이 부서져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로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눈은 이미 흰자위만 남아 있었다.



개방파는 거지들의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짜 말 그대로 세상 천지 별 거지 같은 놈들이 다 모여 있어 질서와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먹고 자고 싸는 식의 본능에 가까운 짐승들의 집단이고, 철저한 약육강식에 의해 가장 강한 우두머리만을 따른다.

그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개방의 방주이자 장문인 모추용이 혀를 차고 있다.

“쯧쯧쯧…”

이 바닥에서 주먹 좀 쓴다는 왕손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어떻게 얻어맞으면 정수리는 또 저렇게 부어오를 수가 있을까. 입도 다물지 못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지, 한쪽 눈은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올라 있다. 한심하다.

모추용이 개방의 상징과도 같은 타구봉을 짚고 일어섰다.

타구봉은 말 그대로 개를 때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개방의 신물이다.

“그냥 떠돌이 무사라며?”

“네에…”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타구봉으로 아주 개 패듯이 패준 다음에 나의 항룡십팔장으로 단전을 깨부셔 무공을 폐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너처럼 턱주가리를 부서주고 눈구멍을 하나 파내는 쪽으로 아주 제대로 된 참교육을 시켜줄 것이야. 근데 이 자식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자식이지? 다들 따라와.”

개방의 장문인이 직접 나섰다. 하지만 그 역시도 얼굴이 대추말벌에 쏘인 꼴이 되어 돌아왔다. 타구봉도 부러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 바닥 밑천이 드러나면 끝이다.

“어이, 모씨.”

“모씨?”

“그래, 모씨. 그렇게 쥐어 터진 당신은 더 이상 우리의 장문인 자격이 없어. 항룡십팔장? 퉤! 그거 다 그동안 주둥이로만 떠든 거 아냐?”

“이 새끼들 보소? 와 이 거지새끼들 거둬주고 먹여 줬더니.”

“똑같은 거지새끼끼리 새끼새끼 하지 말고 증명하면 될 거 아냐?

“그래, 오늘 다 죽고 싶다 이거지? 한꺼번에 덤벼.”

개방의 거지들이 장문인의 실력을 의심하고 무시와 시비 끝에 떼거지로 덤벼들었다. 장문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거지들의 혈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추용의 옷자락 하나를 스치질 못했다.

모추용의 항룡십팔장은 진짜였다.




개방의 뒤를 봐주며 인신매매로 매춘업을 하고 있는 매향루의 주인 진천은 소림사에서 쫓겨난 자다. 금강불괴의 고수다. 칼도 그의 몸을 뚫지 못한다.

그가 개방의 장문인 모추용의 얼굴을 보며 배꼽이 빠져라 웃다가 부하들을 폐가로 풀었다.

“놈을 잡아와. 당장.”





안녕하세요? 임경주입니다.

신작 쾌검 시작합니다. 홍화는 지금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