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를 당한 유매니저 이야기 [1]

by 서킬스
선배님 저 여쭤볼 게 있어요. 저의 사정은 잘 아실 테고, 제가 이번에 이쁜 딸이 생겼는데 제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살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은 들고 있어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내도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육아만 하는지라 저 혼자 돈을 버는지라 돈 모으는 족족 전세금만 올려주고 있단 말이죠. 이대로면 내년에 전세 계약 끝나는데 그때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선배님 저 좀 도와주세요.





개인적으로 회사나 친구, 가족들에게는 저의 투자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 주변 사람들이 제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도움을 구할 상황이 되었거나 문제가 생기는 지점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상황인지 들어보고 제가 아는 범위에서 도울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회사에서 바로 옆자리 후배 이야기입니다. 후배는 3년 전 전세사기를 당한 이후 간신히 모은 돈으로 다시 빌라의 전세를 살면서 여자친구와 결혼 후 정말 이쁜 딸도 낳아 잘 사는 중이라고 합니다.


3년 전의 그 사건 이후 투자, 특히 부동산 관련해서는 완전히 담을 쌓고 지낸 터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딱히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또 다른 전세사기를 당하지는 않아야지 하는 정도로만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규제기 강해지며 갭투자를 막고 대출을 제한하며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시도가 거세진 가운데 저는 이 후배가 딱 생각이 났습니다.


신규 투자자들의 수도권 갭투자가 막히면
앞으로 전세나 월세 신규 물량이 더 나오지 않을 텐데
그럼 이 친구는 앞으로 전셋값을 속절없이 올려줄 수밖에 없겠구나.
규제의 결과가 우리 같은 세입자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예쁜 딸을 낳고 회사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친구지만 앞으로 본인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르는 상황, 하루는 그 친구와 함께 야탑역 근처의 회식장소로 같이 이동하며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선배님 회사 선배님들이 저만 보면 전세사기 이야기 한다니깐요. 회사에 괜히 이야기했어요 정말...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남 일에 왜 그리 관심이 많은 건지."


후배는 본인의 이야기가 선배님들의 안줏거리로 쓰인다는 것이 못내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나도 그 친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 웬만하면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애썼는데,,,


"그래 속상하지.. 누가 갚아줄 것도 아니고 말이야. 우리는 오늘 회식이나 잘 끝내고 집에 가자."


"선배님 저 물어볼 게 있어요, 선배님 부동산 투자하는 거 다 알아요. 옆자리에 있는데 맨날 부동산 사이트 들어가시는 거 보면 엄청 관심이 많으신 거 같고... 또 저희끼리 이야기할 때 선배님 부동산으로 떼돈 벌었다 막 이런 소문도 있고 그래요. 진짜예요?"


"야, 진짜면 내가 오늘 이 황금 같은 시간에 이렇게 회식을 왔겠냐. 진작에 다른 데로 샜지... 절대 그렇지 않아."


"네,, 선배님 저 여쭤볼 게 있어요. 저의 사정은 잘 아실 테고, 제가 이번에 이쁜 딸이 생겼는데 제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살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은 들고 있어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내도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육아만 해가지고 저 혼자 돈을 버는지라 돈 모으는 족족 전세금만 올려주고 있단 말이죠. 이대로면 내년에 전세 계약 끝나는데 그때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선배님 저 좀 도와주세요."


아차 싶었다. 내가 뭐라고 누굴 알려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친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SOS를 친 것인데, 적어도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는 더 자세히 들어보자.


"그래. 나는 투자를 잘하지도 못하고 누구를 가르칠 실력은 더더욱 안돼. 하지만 고민이 있다면 같이 들어줄 순 있어. 그렇게 하면 또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이 번뜩 나올 수도 있고 말이야? 하하."


"선배님, 일단 전세사기건은 부모님께서 도와주셔서 많이 해결이 되었어요. 제가 궁금한 건 지금 이후의 저의 미래예요. 일단 요새 부동산 규제니 뭐니 엄청 시끄러운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뭔가 굉장히 벅찼지만 그래도 잘됐다 싶었다. 나는 최대한 머리를 짜내서 이 친구가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에 25년 10월 현재 갭투자자가 아니라 세입자들이 맞이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흠, 쉽게 이야기해 볼게. 우리는 회식을 들어가야 하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금 수도권, 특히 수도권 동남부, 그러니까 성남시 분당구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 중 세입자는 지금부터 엄청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질 거야."


"아니, 규제가 왜 그렇게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나는 절대 갭투자자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야. 그렇다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 줘. 하지만 현재 정책은 서울 포함 수도권 동남부 대부분의 도시에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행위를 원천 차단했어."


"그래서요?"


"그럼 어떻게 되겠어?"


"갭투자가 없어지는 건 좋은 거 아니에요?"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분들이 어쨌든 새로 산 집에 본인들이 들어가 살 수 없으니까. 그 집을 전세나 월세로 돌리는 거잖아? 근데 지금 그런 분들이 집을 사면 무조건 실거주를 해야 한다는 거거든? 그럼 어떻게 되냐... 하면 앞으로 전세랑 월세가 새로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이거 엄청 심각한 거야."


"아... 그럼 전셋집이 엄청 귀해지겠네요?"

"맞아. 그럼 우리 같은 세입자들끼리 기존에 전세로 살다가 계약이 끝나면 주변 단지로 가서 간신히 하나 전셋집으로 나온 귀한 전셋집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게 될 거야. 그럼 당연히 수요/공급 원칙에 의해 가격이 오르게 되겠지. 그럼 그 귀한 전셋집의 가격이 엄청 올라갈 거고 성남 분당에 위치한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더 받던지 해서 그 집을 먼저 선택해야 할 거야. 난 이게 너무 걱정돼. 그래서 네가 나한테 이거를 꼭 물어보길 원했어."


"와, 근데 너무 비현실적인데요. 정말 그렇게 될까요?"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미래를 예측할 순 없겠지. 하지만 역사적으로 수도권 전세 물량 공급이 적었던 시기엔 언제나 전세가가 상승했고 세입자들은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어쩌겠어. 집은 필수잖아. 우린 어딘가에 살아야 돼. 난 아이가 없지만 넌 이제 아이도 있으니까 주변에 어린이집이 있거나 소아과가 있는 등의 아이를 키울만한 좀 더 좋은 환경을 갖추고 회사도 다닐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하잖아. 그런 조건들이 하나씩 붙으면 매매든 전세든 값은 더 올라가게 마련이지. 아 이거만은 알아줘 절대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건 아니야. 물어봐서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 오해하지 말아 줘."


"선배님, 이미 불안하고 조급해져요."


"아 절대 조급할 필요는 없어. 아직 전세 기간이 남았잖아. 그동안 이제 뭘 하면 좋을지 충분히 공부할 시간이 된다고!"


"선배님, 그럼 저 이제 뭐 하면 돼요?"


"아 이제 뭐 하면 되냐고? 이제 회식 들어가야지 팀장님 기다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