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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짐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by 정용수

함박눈 내린 새벽

골목길 눈을 쓸어 놓는

말 없는 정성이고 싶다


모두가 잠든 밤

홀로 핀 꽃의 노래를 듣는

비밀스런 관객이고 싶다


거리의 연주자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에 선뜻

지갑 속 가장 큰 지폐를 놓고 가는

무명의 행인이고 싶다


모두 제자리를 지키며 저무는

가을 강변에 가면

서둘러 제자리를 찾아 앉는

착한 물새이고 싶다


인적 드문 산 마을 너머로도

저녁마다 노을은 불타고

숲에는 영화처럼 눈이 내린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가장 낮은 마음으로 살아도

이젠 아프다 울지 않으리라


남겨진 삶의 시간을 알고

길을 나서는 사람에게

잊혀짐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과분한 사랑만이 내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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