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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서...

by 정용수

보수라서, 진보라서

부패하고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그렇다.


전라도라서, 경상도라서

편협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그렇다.


어둠에 맞서던 대안 세력들이

더 짙은 어둠으로

쉽게 변질되는 것도

인간이라서 그렇다.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절대 부패하는 것도

인간이라서 그렇다.


가르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나쁜 짓은 저절로 배우는 것도

인간이라서 그렇다.


목청 높여 정치인들 욕하는 사람도

자신이 손해 볼 일이 생기면

조금의 양보도 없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는 것도

인간이라서 그렇다.


실천하지도 못할 이념으로

편 갈라 싸우기 전에

내가 그런 인간임을 먼저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성공과 권력 앞에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이기적이었나를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

부끄러운 내 양심에 먼저 죽비를 내려치며 살아야 한다.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은 반복해서 행하는

내 존재의 모순에 대해

더 많이 아파하며 살아야 한다


정답을 알면서도 정답대로 살지 못한

남루한 내 신념을 꺼집어 내어

한 번씩은 비겁한 눈물이라도 흘리며 살아야 한다.


결핍과 모순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서로의 아픔에 대해

정죄하려고만 하지 말고

괜찮은지...견딜만 한지..

안부를 물어가며

부끄러운 변명에도 귀 기울여 주며

끝까지 함께 이 길을 가야 한다.


인간에 대한 절망이

오히려 부족한 서로를

좀 더 쉽게 용서할 수 있었다는

역설 같은 진리에도 고개 끄떡이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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