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4
“초나라의 국왕 소왕(昭王)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백성들의 숫자가 자꾸 줄어들어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나라의 백성들이 초나라로 오도록 할 수 있을 까요?’ 공자의 답은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였다고 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그 소문을 듣고 모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 미타암 주지 동진스님 법문 중-
두 번째 미타암 방문이다. 3년 전에도 비슷한 시기에 방문했었다. 당시에는 조금 더 가을이 깊어 가을꽃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미타암은 천성산 8부 능선인 해발 약 812미터에 위치해 있다. 대형 버스가 올라갈 수 없어 사찰에서 운행하는 승합차를 타고 가야 한다. 미타암 방문 전에는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르는 것이 좋다. 승용차로 방문해도 적당한 곳에 세워 두고 족히 30분은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
높이 나는 새의 시선으로 양산 시내와 들판 그리고 멀리 울산까지 그야말로 ‘조망’ 할 수 있다. 식견이 높아 세상사도 이렇게 훤하게 통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번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내려다보는 풍광에 홀려 법당참배는 후순위가 되었다. 가슴이 뻥 뚫리고 번뇌가 사라진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한참을 그저 바라만 보다 굴법당으로 들어갔다. 석굴형 법당 안에는 보물 제998호 석조 아미타여래입상이 있다. 경주에서 조성해 옮겨 왔다고 한다. 기도를 하니 육근(六根)이 청정해지는 기분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미타암은 서방정토를 관장하는 아미타불 기도도량이다. 주지스님에 따르면 예전에는 일 미타암 이 문수암 삼 보리암으로 불릴 정도로 영험한 기도도량이었다고 한다. 문수암은 고성에 보리암은 금산에 있다.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대웅보전에 앉았다. 사투리를 써 가며 쉬운 말로 하신 설법이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
“자리 잡고 앉는다는 것은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침대와 의자 문화는 싸우러 빨리 나가야 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에요. 바닥에 앉아야 수행이 가능합니다. 처음엔 남에 대한 원망과 미운 생각이 먼저 듭니다. 나중엔 나도 별 것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 남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고 고마운 생각도 들어요. 그것이 마음 비운다는 것이고 도 닦는다는 것입니다. 절에 왔다 가면 얼굴빛을 밝게 해야 해요. 공자의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를 명심해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면 멀리까지 소문이나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보살들은 오늘 집에 갈 때 고등어라도 한 마리 사가서 가족들에게 요리해 주세요”
학생들에게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부모님이라고 답한다. 가끔씩 여자친구라고 답하는 녀석들도 있다. “선생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라고 하면 “에이 설마”하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온 정성을 다해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하고 있든 그 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됩니다” 그제야 학생들은 미심쩍은 눈초리를 거둔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미타암을 나와 홍룡사로 향했다. 홍룡사는 홍룡폭포로 유명한 사찰이다. 무지개 ‘홍’ 자와 용 ‘룡’ 자를 쓴다. 3단으로 흘러내리는 물보라 사이로 무지개가 자주 비치는데 그 모습이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20미터 높이의 폭포에 홀려 법당참배를 후순위로 미루는 불경을 또 저지른다. 계곡을 울리며 떨어지는 물줄기에 모든 장애가 씻겨 나가고 사대(四大)가 강전해지기를 서원한다.
폭포에 인접해 있는 관음전에는 33관음중 하나인 백의관음(白衣觀音)과 낭견관음(瀧見觀音)이 모셔져 있다. 낭견관음은 폭포를 바라보며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씻어주는 관음보살이다. 홍룡사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관음보살 친견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관음성지 중 하나다. 홍룡사 창건유래 안내문에 낭견관음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보문품’ 게송에 ‘낭견관음을 염하면 불도가니가 변해서 연못이 된다’는 말씀이 있는데, 벼랑에 앉아서 용을 바라보는 형상을 하고 계시는 보살님이 낭견관음보살님이다. 천년동안 감로수를 내려주는 폭포에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시며 기도하는 중생들의 원을 이루어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안내문에는 천성산의 유래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송대(宋朝)의 승려 찬녕(粲寧)이 988년경 지은 불교전기(傳記)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의하면 천성산(千聖山)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원효스님께서 중국당나라 태화사 승려들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예견하고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板救衆)”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 그들을 구해 주었다. 이 인연으로 천명의 중국승려가 신라로 와서 원효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천성산에서 원효스님의 ‘화엄경’ 강설을 듣고 모두 득도해 천명의 성인이 되었다.
우리에게 천성산은 지율스님의 ‘도롱뇽 소송’으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스님은 2003년 2월부터 천성산 관통 예정인 고속철도(KTX) 노선 및 터널 건설 반대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천성산 내 생태계 파괴 우려를 이유로 제기된 가처분 및 공사중단 요구 소송을 이끌었으나 결국 패소했다. “자연물 또는 생물에게 소송당사자(원고) 자격이 없다”라고 법원은 보았다. 지율 스님에게 천성산은 "불교의 자비가 살아 숨 쉬는 법신(法身)"이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깨어 있어야 할 도량이었으나 현실의 법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개발과 보존’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화두 중 하나 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