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이다

2018.06.01

by conair

‘하늘은 맑은데, 오늘도 미세먼지는 ‘나쁨’입니다. 실외수업 자제해 주시고 외기유입 차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대구광역시교육청 통합메신저를 통해 전체 선생님에게 보낸 쪽지함 글의 내용이다. 학교 미세먼지 담당자로서의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매일 아침 대구시환경정책과에서 보내오는 오늘의 미세먼지 상황을 보고 ‘나쁨’이나 ‘매우 나쁨’ 일 때 매뉴얼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벌써 2달째 거의 같은 내용의 쪽지를 보내고 있다. 미세먼지가 많아진 것이 중국 탓이다, 아니다 우리나라의 문제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6월 첫날 수은주는 31도를 찍었다. 오후 5시가 되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공문을 처리하다가 끈적끈적함에 불쾌지수가 스멀스멀 올라감을 감지하고 교무실 밖 베란다로 나간다. 전자파에 피로해 질대로 피로해진 내 눈에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짙어질 수 없을 정도로 푸르러진 무학산이다. 미세먼지를 뚫고 저 멀리 무학산의 푸르름을 두 눈에 가득가득 채운다.


몇몇 선생님들도 농사를 짓고 있는 텃밭은 갖가지 푸성귀로 풍요롭다. 군데군데 힘겹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흰 감자꽃이 수줍은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상추는 빼곡히 밀도가 높다. ‘제발 저를 좀 솎아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오디가 달리지 않는 뽕나무여서 인지 몇 년 전 사지가 다 잘려나갔던 뽕나무는 어느새 옛 모습을 되찾았다. 서로 많이 먹기 위해 허겁지겁 먹느라 푸르뎅뎅하게 된 서로의 입가를 보고 깔깔대며 웃던 고향 친구들이 그립다. 지금은 태허가 되어버린 내 선친이 잠들어 있는 고향의 무덤가엔 지금 쯤 새까만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 있을 터이지만 아무도 찾는 이가 없다. 중력의 법칙을 못 이기고 땅으로 떨어진 오디를 인간 대신에 미물들이 포식을 하고 있을게다. 그때는 배가 고팠고 지금은 미세먼지 때문에 내 눈과 코가 아프다.


교정과 텃밭사이 길에는 차들이 빼곡하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교정에 세우지 못한 차들이 뒤엉켜있다. 나 보다 나이가 많은 과학 선생님이 자신의 차를 막고 있는 차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가 자동차 배기가스라고 하는데, 차들은 넘쳐나고 10부제는 준수되지 않는다. ‘신음하는 지구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 나의 자손을 위해 혜안을 가지고 진실을 간파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실천행을 해야 할 때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중 주차해 놓은 여선생님이 나오신다. 교정과 길을 분리해 놓은 철망사이에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을 가리키며 ‘예쁘죠? 자유학기 첫해 심은 장미예요.’라고 인사를 한다.’ 흐드러 질대로 흐드러진 장미는 철망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자신을 보아달라고 파스텔톤 향기를 내뿜고 있다. ‘선생님이 더 예뻐요.’ 장미보다 이쁜 말을 진심을 담아 건넨다.


바람이 분다. 주위의 나무들을 뒤로하고 창공으로 우뚝 솟은 버드나무를 흔든다. 푸른 바다의 흰 갈치 치어 때 같다. 우아한 무용수가 입은 화려한 무도복의 구슬 같다. 그물에 걸린 멸치의 파닥 거림 같기도 하다. 버드나무 8부 지점에 까치집이 보인다. 내 눈은 까치를 찾아 이리저리 숲을 뒤진다. 한 참 만에 열심히 모이를 쪼고 있는 까치 한 쌍을 발견한다. 암수 서로 정답다. 왜 까치는 저리 높은 곳에 아슬아슬하게 집을 짓는 것일까? 내년 이월이면 정년퇴임을 하지만 올해도 담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초로의 과학 선생님이 2000년대 초 과학대전 대상의 주제가 바로 까치집 연구였다고 전해 준다. 전국의 까치집을 조사해 본 결과 대부분 땅에서 15미터에서 20미터 사이에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이유를 조사해서 발표한 것이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호기심에 앞서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쌓는 것이 발명의 더 중요한 요소다.’라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까치집을 호기심 있게 바라본 학생들을 생각해 보면 위대한 발견의 바탕은 지식이 아니라 호기심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본다.


다시 바람이 분다. 버드나무 잎이 흔들린다. 나의 마음도 흔들린다. 6조 혜능의 호통소리가 들린다. ‘예끼 이놈,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버드나무 잎도 아니고 네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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