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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감각으로 번역하기

4강 숙제 : 추상적 감정 1개를 선택해 그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묘사

by 노래하는쌤

[미션]

외로움, 설렘, 불안, 질투, 그리움 등 추상적 감정 1개를 선택해 그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을 1,000-1,500자로 묘사


[규칙]

✓ 감정 단어 직접 언급 금지 (외롭다, 불안하다 등)

✓ 냄새, 소리, 색 중 최소 2가지 이상 적극 활용

✓ 독자가 읽고 무슨 감정인지 느낄 수 있어야 함


[형식]

- 자유 (에세이, 짧은 이야기, 일기체 등)




나 가거든... 차라리 죽었다고 생각해 줘.


대학 동아리 발대식 날이다. 학생회관 대강당에서 발대식 준비로 한창이다. 동아리별로 모여서 삼삼오오 음식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쪽에서는 부침개를 부친다고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와 부침개 냄새가 흘러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한방약재에 수육을 삶는다고 한약냄새가 스멀스멀 퍼져온다.


메인부스에서는 돼지머리를 올려 두고 고사를 지낸다고 세팅을 하고 있다. 돼지머리 콧구멍에는 만 원권 지폐가 돌돌 말려 꽂혀 있다. 고사 테이블 세팅이 끝난 후 사회를 맡은 은성이와 내가 먼저 소주잔에 술을 따라 한 바퀴를 돌린다. 그 뒤를 이어 학생회장, 동아리별 단장들이 성공적인 발대식을 기원하는 술잔을 돌린다. 소주의 알코올향과 삶은 돼지머리 비릿한 향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잔잔하게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발대식 사회 리허설을 시작한다.


대본을 처음 맞춰보는데 제법 호흡이 잘 맞는다. 2~3번 맞춰볼 계획이었는데 호흡이 잘 맞아서 한 번에 끝내고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학생회장 인사말 진행 후 동아리별 소개가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축하공연 리허설까지 순조롭게 마무리된 후 자리를 정비하고 본식이 진행된다.


새로운 내일로의 희망대학교 동아리 발대식을 시작합니다.


'와와와와와와'


'휘휘휘휘휘익'


우렁찬 함성소리, 휘슬소리, 드럼의 북소리와 심벌로 발대식 개최를 알린다. 폭죽이 터지자 선홍빛, 살구빛 한지 종이가 강당을 물들인다. 사람들의 희미했던 미소가 환하게 번져간다. 동아리별 소개가 차례대로 진행된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밴드동아리 몽당연필 회장님의 유머로 강당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 찬다. 순서대로 각 동아리의 소개가 진행된 후, 마지막으로 재창단된 HAM 동아리 회장님의 기가 막히는 '동감' 영화 패러디로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한다.


'으아하하하하'


참석자들의 웃음소리가 강당의 높은 천장을 뚫을 기세로 울려 퍼진다.


발대식 마지막 순서는 축하공연이다. 3팀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첫 번째는 밴드동아리 '몽당연필'의 자작곡 축하발표다. 기타리스트의 현란한 기타 소리를 다들 넋을 잃고 바라본다. 두 번째는 한자서예동아리의 행위예술을 빙자한 코믹쇼가 진행된다. 커다란 붓에 먹물을 묻혀 10m 한지에 '신토불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동아리회원들이 붓을 바통터치하여 릴레이로 적는다. 마지막은 사회를 맡은 노쌤의 '나 가거든' 솔로 공연이다.


두 번째 공연까지 전혀 긴장감 없이 웃고 떠들던 나다. 나의 순서가 다가오자 약을 먹고 오지 않은 것이 그제야 기억난다. 등줄기에서 싸한 느낌과 함께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 뒤통수 쪽으로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쉬고 있던 숨을 인지하기 시작하자 호흡의 결이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점점 호흡이 복식에서 흉식으로, 흉식에서 턱끝까지 차고 올라온다. 숨은 더 가빠져 쇄골아래가 들썩거린다. 결국 심호흡을 하며 입을 벌리고 호흡을 시작한다. 드디어 나의 순서다.


'도망갈까? 뭐라고 하고 도망가지?'


고민하는 사이에 조수미 씨의 '나 가거든' 전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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