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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이 러너 Mar 19. 2017

언젠간 진심일 수 있겠지

서로에게 외치는 "잘했어"라는 그 말이

대선이 코앞이라는데, 정치 기사는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부 발령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신참 정치부 기자가 공부하며 쓰는 정치 용어 사전. 아는 만큼 쓸 수 있고, 아는 만큼 보인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포스팅.


2월 국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상법도, 특검법도, 아무것도 통과시키지 못한 또 한 번의 '빈 손 국회'. 3월에도 임시국회를 소집한다는 인공호흡 장치만 겨우 달고 흩어진. 그들에게 표를 던진 이들에게는 늘 그저 그렇게 피곤하고 추웠던 어느 목요일 저녁이었다.


국회는 산적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여념이 없었다. 멍~ 한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앉은 이들은 의장의 말에 따라 거수기의 버튼을 누르기 여념 없었다. 


어떤 이들은 카카오톡으로 괴로움과 지루함을 호소하다가 그 장면이 언론사 대포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결국 투표 인원의 부족으로, 3개의 법안은 먹다 남긴 송편 조각처럼 다음 국회로 넘어갔다.


본회의장엔 이렇게 펜을 세우는 마법을 부리는 분도 계시다.


오후 7시를 넘긴 시각. 텅 비어버린 본회의장에서 5분 동안의 자유발언을 하러 몇몇 의원들이 자리에 올랐다. 그를 지켜보는 것 역시 몇몇 기자들과, 그리고 저녁 약속이 없는, 혹은 있지만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남았을지 모르는 몇몇 의원들만이 남았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5분 발언을 마치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의원들이 외쳤다. 


잘했어!


몇 없는 목소리였지만, 음파는 텅 빈 본회의장의 천장을 때리고서야 흩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발언에 칭찬과 격려도 이어졌다.


처음엔 찡했다. 동료애로구나. 텅 빈 회의장에서 텅 빈 의자들을 향해 외치는 자유발언.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는 몇 남지 않은 동료들.


국회를 취재하기 시작하고 느낀 것 중 하나가, '생각보다 국회의원이 바쁘다'는 사실. 밤낮 전화를 걸어대는 기자들의 탓도 있겠지만, 생각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초보 정치부 기자로. 이 사실에 약간 감동받았던 상태라.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에 문득 찡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잘했어"는 다른 당 의원들에겐 잘 쓰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잘했다는 목소리가 더 커진다는 사실. 비난이 자극적일수록 "아주 잘했어"라고 칭찬의 수위도 높아진다는 사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애잔함과 뿌듯함이 증발했다. 결국 정치는 무대 위의 연극인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아무도 속이지 않았지만, 나 혼자 속은 기분. 


그래도 '진심'으로 금배지(국회의원직을 뜻하는 은어)의 무게를 견디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언젠간 더 나은 법을 만드려 노력한 다른 당의 의원에게도, 진심으로 "잘했어"를 외치는 국회가 언젠가 오지 않을까. 그리고 국민들도 "잘했어"를 외치는 날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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