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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이 러너 Dec 12. 2020

사이클링이 골프를 대신할까?

[자전거를 생각합니다]#3. 아무 의미 없는 종목별 우열 가리기

"사이클링이 골프를 대신한다!"

(Cycling is the new golf, 원문 기사 링크)


기자 일을 막 시작했던 2015년 읽었던 외신 기사의 제목인데요.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여유자금도 없어, 늘 온라인으로 '입문용 자전거'를 검색해보며 동경만 했던 때네요.


자전거를 취미로 하는 요즘, 문득 몇 년 전 읽었던 기사 생각이 났습니다. COVID-19 여파로 골프 인구가 늘었다는 기사도 읽게 됐고요. 해외여행 가는 대신 그 돈을 투자해 경치 좋은 골프장을 찾는다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주변에 골프를 시작한 이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아무튼 맨 위의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젊은 창업가들이 전통적으로 사업가들이 즐겨하던 골프 대신 자전거를 탄다는 간단한 내용이죠. 사이클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자전거가 골프에 비해 운동량이 많아 '진짜 운동'이라는 인식을 주고, 사이클링 컴퓨터를 이용해 운동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근거로는 골프 인구가 줄어든 대신 자전거 인구가 늘어났다는 미국 골프협회와 자전거협회의 통계를 내놨습니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기사에서는 사이클링 마니아로 등장하는 맥스 레브친의 찬사도 함께요. 여기에 더해 사이클링이 부를 과시할 수 있고, 협동심을 길러준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도 조금 들어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사에 나온 데이터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선 좀 의문이 드네요. 골프 인구가 줄었다고 자전거 인구로 모두 유입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리콘밸리에 출장 차 갔을 때 보니, 자전거 타기 정말 좋은 환경이기는 했지만요. 길도 넓고 날씨도 한국에 비해선 너무 춥거나, 덥거나 하지도 않습니다.(바람막이로 멋 부리기 딱 좋은 날씨)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 이 부분은 매우 동의합니다. 추후 다루어 보겠지만, 사이클링에선 자전거에 달린 각종 장치를 이용해 운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속도 그 이상의 뭔가가 있죠. 혼자 라이딩을 해도 수집이 되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앉아서 시원한 음료 한 잔과 함께 이를 분석하는 재미가 있죠.


물론 모든 사이클리스트들이 이런 식으로 자전거를 타지는 않습니다. 자전거를 즐기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죠. 하지만 적어도 데이터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하는 실리콘밸리의 CEO들이라면 충분히 이런 점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네요.


골프도 사실 데이터 게임이죠. 당장 점수를 내는 것부터가 일종의 데이터니까요. 이 외에도 주변에 골프를 즐기는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면 슬로 모션 카메라로 찍어서 폼을 교정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느냐의 차이지,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면에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운동량을 비교해볼까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제가 쉬지 않고 탔을 때 1시간 30분 정도로 다녀오는 서울 남산 코스를 기준으로 1000kcal 정도를 소모합니다. 거리로는 40km가량이죠. 물론 3시간, 4시간이 넘는 코스를 타고나면 소모 칼로리는 2000kcal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골프는 어떨까요? 저는 이번 글을 쓰며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네요. 18홀을 기준으로 카트를 타지 않고 걸어서 이동하면 1만 2000보가량. 약 1500kcal를 소모하게 된다고 하네요. 대부분 카트를 타고 이동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서 실제로 소모하는 열량은 더 적겠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쓰죠.


결국 뭐가 진짜 운동이니, 가짜 운동이니 하는 싸움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운동 성향과 취향에 가깝다는 결론에 근접하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기사에서는 자전거가 '함께 달리기 때문에' 협동심을 길러주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론 조금 과도한 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동호회 활동을 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며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게 과연 '협동심'에서 기인한 것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우선 안장 위에 오르면 대화가 많이 줄어들죠. 페이스가 맞는 분들과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꽤 있지만, 그것도 1열로 달려야 하는 도로교통법상 한적한 도로가 아니면 쉽지 않습니다. 물론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끌어준다'라고 말하는 활동도 있지만, 몇 시간을 함께 프라이빗하게 걸어 다니며 대화를 나누는 골프에 비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골프가 지닌 사회·문화적인 지위를 무시하기 쉽지 않죠.


물론 라이딩 앞뒤로 친목을 다질 시간은 충분하지만, 그건 골프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아직은 '사이클링이 골프를 대신한다'는 명제는 썩 들어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올해 들어서는 다시 골프 인구를 꽤 회복했다는 통계들도 있고요. 자전거 인구도 같이 늘어난 것을 보면 애초에 두 운동의 소비층이 크게 겹치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죠.


아무튼 골프를 즐기는 직장 동료,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니 이런 생각까지 미쳤네요. 사실 운동을 두고, 뭐가 낫다는 우열을 가리는 것부터가 의미 없는 생각 아닌가 합니다. 어떤 운동을 하느냐보단,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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