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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사과

민낯

서구 사회에서 사과는 아담과 이브가 파라다이스에서 쫓겨난 이후, 금지된 지식의 메타포였다. 그렇다면 잡스는 왜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자신의 로고로 채용했을까? 잡스는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애플의 로고는 금단의 세계에 대한 기술적 접근 권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세 시대에는 지식을 해석하는 중개자가 필요했다. 이러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영어 단어로는 ‘immediate’가 있다. ‘immediate’는 im(not)과 media(중간자)의 합성어로, 중간자가 필요 없으니, ‘즉각적인’을 뜻하게 된 것이다. 잡스는 이러한 상황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까? “인터페이스는 단순해야 하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은 늘 강조한다. “Think Different.” 이것은 나는 남과 다른 나로 존재하겠다는 선언이다. 뉴턴은 사과로 만유인력을 열었다면, 잡스는 사과로 디지털 문명을 열었다. 잡스의 사과는 지식의 시대를 상징하는 일종의 토템이 된 셈이다.

뉴턴의 사과가 우리를 별까지 닿게 했다면, 잡스의 사과는 기술과 우리를 손가락 끝으로 연결시켰다. 기계는 차갑고, 인터페이스는 불친절하며, 기술은 전문가의 거실에 갇여 있던 시대에 잡스는 말한다. “기술은 사용되는 순간 완성된다.”

뉴턴은 직접 기계를 만들지 않았고, 공장에서 연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만유인력과 고전 역학은 자연이 계산되고 예측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세계는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 이 한 문장은 증기기관을 탄생시켰다. 우리는 자연을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고, 결국 톱니바퀴는 인류의 운명을 돌려 버렸다.

잡스도 AI를 설계하지 않았고, 딥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잡스는 인간의 손바닥과 디지털 세계를 연결했다. 정보가 흐르고, 데이터가 쌓이며, 우리는 네트워크 위에 살기 시작했다. “기술은 인간을 향해 번역되어야 한다.” 이 말은 디지털 신경망을 만들었고, 그 신경망 위에서 AI가 생각하며, 데이터가 숨 쉬고 있다.

사과가 나타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텐데 왜 뉴턴만이 사과의 낙하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착상했을까? 뉴턴은 단지 사과를 본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세계를 상상했다. “어째서 달은 지구의 주위를 떠나지 않는가?”, “왜 대포알은 멀리 쏠수록 낮아지는가?”, “ 그 힘은 하나인가, 둘인가?” 사과는 우주의 문장을 열어주는 열쇠였다.

잡스는 사과의 단면에서 기술의 속살을 보았고, 그 결을 따라 가장 담백한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잡스가 추구한 그 단순함은 바로 오늘 우리의 손바닥에 스며 있는 여백이다. 잡스의 단순함은 오컴의 면도날을 기술과 디자인의 언어로 완벽하게 실현한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이 사유의 불필요한 가정을 쳐냈다면, 잡스의 면도날은 제품의 불필요한 조각을 쳐냈다. 기능을 줄인 것이 아니라, 불순물을 제거한 것이다. 잡스는 기술이 우리의 손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결국 오컴의 면도날이 현대 문명 위에서 다시 번쩍이는 순간이다.

금단의 열매

처음 한 입

빛의 어둠을 갈라

세계의 숨결을 흔드네

그때 우리는 몰랐네

깨달음이란

돌아갈 수 없는 길의 문턱이라는 것을

신의 울타리 밖에서

희미한 질문이 움트고

손끝에 닿은 지식의 결이

작은 영혼의 불씨를 심는다

뉴턴의 정원에 떨어진 붉은 사과

만물의 끌림을 속삭이는 곡선

잡스는 한 입 베어 문 사과로

디지털 세상을 다시 쓴다

금단의 열매는

두 가지 맛을 지니네

아득한 두려움과

지울 수 없는 자유

우리는 오늘도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또 다른 사과를 향해 걸어가네

금단은 늘

미래의 시작이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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