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리 터널을 넘어

창작 편집

‘이만리 터널을 넘어’를 릴리스한 지 세 시간 만에, 내 글을 가장 열심히 읽고 있는 친구로부터 카톡이 날라 온다. “석굴암의 금강역사가 아니라, 8부 신장 중 하나인 건달바가 사자 가죽을 쓰고 있다네.” 이 친구는 평소에도 내 글의 오류를 정확하게 지적해 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사실에 대한 지적이라 살짝 두렵다. 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공중파 유튜브를 보고 쓴 거야.” 대화를 시작한 지 20분 만에 그가 핵폭탄을 던진다. 바로 사자 가죽을 머리에 이고 있는 건달바의 사진이다. 내가 올린 사진의 머리는 흐릿하여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바로 꼬리를 내리며, 글을 수정한다.

우리의 선조는 통일신라 시대에, 토함산 자락에서 화강암을 잘라서 석굴을 쌓고, 본존불을 조각하여 석굴암을 지었다. 나는 이 본존불을 지키는 8부 신장 중에서, 건달바상에 주목한다. 건달바상은 독특하게도 사자 가죽을 머리에 두르고 있다. 그렇다면, 건달바상은 왜 머리에 사자 가죽을 쓰고 있을까?

2,300여 년 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인도 간다라 지방에 도달한다. 그때 자신의 강인함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주둔지에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고 있는 헤라클레스 상을 세운다. 이를 본 간다라 지방의 수도승은 본존불을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할 금강 역사상의 머리에도 사자 가죽을 조각한다. 결국 머리에 사자 가죽을 쓰고 있는 금강 역사상은 간다라 지방에서 탄생해, 중국을 거쳐 신라에 전해지며, 건달바상에 사자 가죽을 얹었다. 한반도에서 8,500km 떨어진 마케도니아에서 시작된 사자 가죽이 이만리 터널을 넘어오는데, 1,000년이 걸렸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사자를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었다. 우리의 민화나 야사에도 호랑이는 건재했지만, 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간송 미술관 정문을 지키던 석사자상도 청대의 사자상으로 밝혀져,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런 면에서 나는 사자 가죽을 쓰고 있는 건달바상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헤라에 의해서 유명해진 헤라클레스는, 첫 번째 과업으로 네메아 골짜기에 살던 괴물 사자를 제압하는 것을 명 받는다. 헤라클레스는 도구를 버리고 두 팔로 사자의 목을 숨이 끊어질 때까지 끌어안는다. 문제는 사자를 쓰러뜨린 뒤에, 어떤 칼로도 사자 가죽을 베지 못한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사자 발톱으로 사자 가죽을 벗겨낸다. 그때부터 헤라클레스는 사자 가죽을 갑옷 삼아,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닌다.

헤라클레스는 인간이자 신이어서, 펠로폰네소스에서는 인간 중에서 가장 힘센 장수로 여겨졌다. 헤라클레스는 신의 아들이지만 신처럼 살지 못했고, 인간이지만 인간보다 더 많은 번뇌를 짊어졌다. 그렇지만, 신과 인간 사이, 영웅과 죄인 사이에서 선, 헤라클레스는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스스로를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 믿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를 정복한 뒤에는, 마케도니아 왕실이 헤라클레스의 혈통을 잇는다고 전했다. 헤라클레스는 사자와 싸웠고, 알렉산드로스는 제국과 싸웠다. 알렉산드로스는 헤라클레스처럼 살고 싶어 했다. 영웅을 사랑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알렉산드로스는 영웅의 삶을 자기 인생으로 다시 쓰고 싶어 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헤라클레스가 되려고, 칼을 든 것이었다.

이런 헤라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의 영웅이었고,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영웅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산과 골짜기를 떠돌며, 짐승과 신의 시험을 견뎌낸 사내였다. 그의 주 무대는 펠로폰네소스였다. 그에게 부과된 열두 개의 미션은, 모두 펠로폰네소스의 흙냄새를 품고 있다. 헤라클레스는 도시의 영웅이기보다는 대지의 영웅이며, 원초적인 힘의 화신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짐승과 싸운 자이자, 신의 시험을 견딘 자이고, 힘을 휘두르되, 그 힘에 삼켜지지 않으려 끝없이 분투하는 자였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야성을 길들인 인간이었다.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고 있는 헤라클레스 상의 본질은 모든 폭력의 상징을 머리 위에 올려, 야성을 품고 다스리는 것이다.

이런 헤라클레스의 사자 가죽은 승리의 기록이었다.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었던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의 정복지 곳곳에,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쓴 헤라클레스 상을 세웠다. 드뎌, 간다라 지방에서 헤라클레스의 형상과 불교 세계가 조우한다. 이제는 짐승을 때려눕히는 자에서 부처를 지켜내는 자로 재탄생한다.

헤라클레스의 몸에서 타오르던 의미가 이만리 터널을 넘어, 불교의 옷을 입고 건달바로 변주됐더라도, 그 불꽃의 색은 변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와 건달바 모두 이야기한다. “힘은 인간을 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 남기 위해 쓰는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메시지는 사라진 게 아니라, 그리스어에서 산스크리트어로, 정복의 서사에서 수호의 이야기로 전승된 것이다.

영웅은 시대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도, 그 안에서 숨 쉬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헤라클레스도 건달바도 동일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단지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 초원의 먼지 속과 석굴의 고요 속으로 다를 뿐이다. “너는 너 자신의 야성을 이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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