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타고 오는 초인

창작 편집

1월 마지막 일요일 오후 문학 싸롱 친구의 별서에서, 이동애·이동희 작가를 모시고, 북 콘서트를 진행한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서둘러 입장하며, 두 작가에게 인사를 나눈다. 오전에 이미 독후감을 올렸지만, 작가를 만나니, 리셋된 기분이다. 이동애 작가는 초면이고, 이동희 작가는 2번째 만남이지만, 오래된 친구 같다. 같은 시기에, 같은 대학을 다녔다지만, 그들과 나는 37년 동안 타인으로 지내다가, 책을 통해서 그들의 인사이트를 접했을 뿐인데,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다.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집에 가고 싶다’에서 ‘집’의 의미를 각자 자신만의 언어로 토로하기 시작한다. 일단 저자의 생각을 빌린다. “집에 가고 싶다는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 ‘공감 능력’ 같은 가치들이 빈약한 조직에 대한 사람들의 속마음이다.” 나는 ‘집에 가고 싶다’를 들으면, 직관적으로는 ‘토끼고 싶다’는 심리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이라 느낀다. 그런데 두 작가는 ‘집에 가고 싶다’는 밑바닥에 깔린 실망감을 감정적으로 멋지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집을 회사와 대척점에 놓인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나에게 회사는 낮에 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고, 집은 회사 일을 마치고 들어와 쉬는 공간이다. 스마트폰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면, 파란색 서류 가방의 ‘직장’이라는 기호와, 파란색 오각형 오두막의 ‘집’이라는 기호가 눈에 들어온다. 구글도 낮 동안에 머무는 곳을 ‘직장’으로 설정하고, 밤 동안에 머무는 곳을 ‘집’으로 설정하지 않을까?

두 작가는 30여 년 간의 회사 생활에서 느낀 감정이나 노하우를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집에 가고 싶다’를 읽으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 두 작가는 자신들의 소회를 담담하게 기술하면서, 감정에서 부패하기 쉬운 물기를 급격히 휘발시키면서도, 감정의 결은 고스란히 남겨둔 점이다.

에피소드 5 ‘출근길의 감정들 2’에는 회사 생활 초보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구가 너무 멋지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 삶과 회사 생활을 분리하는 중요한 기술 하나를 장착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가면을 쓴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점은 일 진행 사항이 대부분 모호하다는 것이다. 내가 주로 공부했던 하나와 영의 디지털 제국은 모호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 생활은 내내 모호함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메모리를 연구했던 엔지니어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모호함을 묵묵히 견디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집이라는 것에 대해서 각자 삶의 궤적에서 느꼈던 감정을 봇물이 터지듯 콸콸 쏟아낸다. 그런데 살짝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남성이 느끼는 집과 여성이 느끼는 집에 괴리가 존재한다. 일단 여성들의 관념을 듣다 보니, 집에 대한 주도권은 확실히 여성 쪽에 있다는 것을 각성하게 된다.

남성들은 집에 대한 개념이 중구난방이다. 한 친구는 “와이프가 애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외출할 때, 가장 편해.”라고 하소연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어딘가 불편한 존재다. 너무 긴 시간 동안 나를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켜, 내 민낯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내 상태가 좋을 때는 이러한 불편함을 의식하지 않지만, 내 상태가 구릴 때는 이 불편함이 어깨 양쪽을 짓누른다.

우리의 논의에는 집을 단독의 개념으로 보고 있지 않고, 항상 회사와 쌍으로 대비하고 있다. 산업 사회에서 대부분의 회사 생활을 유지했던 우리는 대부분의 낮 동안에 허리가 휘도록 일을 했고, 퇴근하고서는 집으로 들어가 쉬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들은 집과 회사가 항상 세트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조만간 우리 대부분은 은퇴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집이란, 온전히 자신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오늘의 담론을 통해서, 집의 다양한 개념을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집에 대해서 고민해 본다. 문학 싸롱 친구들에게 다양한 집의 레퍼토리를 끌어내는 두 작가는 대단한 책을 집필한 것이다. 작가는 발자크를 좋아하나 보다. 츠바이크의 찬사를 싣고 있다. “일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세계에 바로 발자크의 진짜 존재가 있었다.” 나는 두 작가에 경의를 보낸다. “일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집에 바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머무르고 있다.”

집에 가고 싶다:이동애·이동희 지음/말하는 나무/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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