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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몰락

민낯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다 보면, 중간에 자신들의 조상을 자랑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벨레로폰테스’이다. 영화 미션임파서블 2에서는 생화학 무기 이름으로 ‘키마이라’와 함께 백신의 이름으로 ‘벨레로폰테스’가 등장한다. 아마도 사자 머리에 염소 몸뚱이와 뱀의 꼬리를 가진 괴물로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큰 피해를 주는 키마이라를 벨레로폰테스가 페가소스를 타고 퇴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라우코스가 자신 가문의 족보를 읊기 시작한다. “프로이토스의 아내인 고귀한 안테이아가/벨레로폰테스와 몰래 동침하기를 열망했지만, 현명한 벨레로폰테스는/마음씨가 착한 분인지라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소.”

이 이야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바로 ‘보디발 모티프’다. 보디발은 요셉을 신임하여 집안 살림을 모두 맡기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불륜을 시도하려다가 거부당하자, 요셉이 자신을 범하려 했다고 보디발에게 고발한다. 시기적으로 보면 일리아스가 더 먼저 창작되었지만, 성경의 영향력으로 이 주제는 ‘보디발 모티프’로 불린다.


벨레로폰테스는 자신을 죽이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직접 사형 집행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직접 사형 집행자에게 전달하는 경우를 ‘벨레로폰테스의 편지’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벨레로폰테스의 편지는 여러 군데에서 차용하고 있다. 다윗 왕은 전장에 나가 있던 우리야 장군의 부인 밧세바를 임신시키자, 우리야 장군을 불러들이지만, 우리야 장군이 밧세바와 동침하지 않고 전장으로 복귀하자, 다윗은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 편지를 사령관에게 전달하도록 우리야에게 명령하고, 이를 실행한 우리야는 결국 전사하고 만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가장 음탕한 여인으로 밧세바를 상정하고 있다.

한편,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도 이와 겹치는 장면이 나온다. 클로디어스는 영국 왕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햄릿에게 요청하고, 그 편지에는 햄릿을 죽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과연 벨레로폰테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프로이토스의 장인 이오바테스는 벨레로폰테스에게 자신을 죽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지만, 이오바테스도 벨레로폰테스를 직접 죽이기를 꺼리며, 키마이라를 죽이라고 명령했고, 성공하면 자신의 딸 필로노에와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한다.

벨레로폰테스는 여신의 제단 아래에서 잠들었을 때 아테나가 꿈에 나타나 황금 재갈을 건네며 포세이돈에게 흰 황소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라고 말한다. 꿈에서 깨어나니 자기 옆에 황금 재갈이 놓여 있다. 벨레로폰테스는 포세이돈에게 흰 황소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고, 페이레네 샘에 가서 페가소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페가소스가 물을 마시러 오자 재빨리 황금 재갈을 물리고 페가소스 위에 올라탄다.


이에 벨레로폰테스는 단숨에 키마이라가 있는 곳까지 날아가서, 키마이라에게 화살을 날리지만, 키마이라는 끄떡도 없다. 그러는 사이에 벨레로폰테스는 납덩이를 화살에 매달아 키마이라의 입속으로 쏘아 넣는다. 이후에 키마리아가 불을 내뿜자 입안에 들어있던 납이 녹으면서 키마이라는 타 죽는다.

이오바테스는 계속해서 어려운 과업을 제시하지만, 벨레로폰테스는 페가소스의 도움으로 모든 과업을 해결하고, 심지어는 벨레로폰테스가 과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 군사들을 매복시키지만, 벨레로폰테스는 이들도 모두 죽인다.


이오바테스는 그동안의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딸인 필로노에와 자신의 나라의 절반을 주니, 벨레로폰테스는 필로노에와 사이에서 히폴로코스, 이산드로스, 라오다메이아를 낳는다.

벨레로폰테스는 잘 먹고 잘 살았을 것 같지만, 말년은 참 불행했다. 벨레로폰테스는 왕이 된 이후에 페가소스를 타고 신들이 영역인 천궁에 도달하려 시도한다. 교만해진 벨레로폰테스를 징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등에를 보내 페가소스의 엉덩이를 쏘게 했고, 엉덩이를 쏘인 페가소스가 날뛰는 바람에 벨레로폰테스는 페가소스의 등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된다.


그리스 사상에는 질서 있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고 있는 한계를 무시하는 교만을 ‘휴브리스(Hubirs)’라고 일컫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표적인 휴브리스 위반자는 밀랍 날개를 타고 더 높이 날아오르려다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다.

휴브리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했지만,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을 ‘휴브리스’라고 정의했다.

역사적으로는 토인비가 정의했던 휴브리스에 의해서 자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헤게모니를 움켜쥐었던 나라들도 외부의 적보다는 자국 지배층의 교만으로 인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 사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더라도, 그 사회의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계층이 권력을 쟁취한 뒤로 기득권층이 되어 자멸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일리아스는 다양한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그 화두의 많은 부분은 인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휴브리스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휴브리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성공을 해봐야지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일리아스:호메로스 지음/천병희 옮김/도서출판숲/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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