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강사
우리 사회에는 ‘죽 쒀서 개 준다’는 속담이 있다. 애써 수고했으나 정작 열매는 남이 가져가는 것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때로는 노력의 결과가 본래의 의도와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는 허망함을 담고 있다. 이러한 속담에 가장 들어맞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 바로 ‘정도전’과 ‘송시열’이다.
정도전을 두고 흔히 조선의 설계자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정도전은 조선을 건국하는 데 있어, 정치적, 사상적 골격을 마련한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분명 조선의 초석을 놓은 설계자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구상한 정치는 태조 이성계 사후에 곧 무너진다.
정도전의 이상은 책 속에 새겨진 푸른 지도였으나, 그 지도를 함께 펼쳐 읽을 동료들은 흩어져 있었다. 왕자의 칼날이 그것을 찢기 전에, 그 이상은 이미 신진 사대부의 공감대라는 토양을 얻지 못해 공중에 걸린 청사진으로 남아 버렸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편찬하며 군주조차 법에 매이는 체제를 구상했다. 이는 고려 말처럼 귀족 중심적인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급진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너무 앞서간 발상이었고, 후대 조선 왕들은 법을 집행 도구로만 사용했다.
급진적인 개혁은 이를 뒷받침할 넓은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신진 사대부는 아직 소수였고, 민중에게 정도전의 이상은 낯선 언어였다. 즉, 그의 구상은 시대의 토양을 앞질러버린 사상이었다.
정도전이 심은 나무가 송시열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푸른 이상을 맺은 것이 아니라, 때로는 엄혹하고 쓰디쓴 열매를 맺게 되었다. 정도전이 구상한 성리학적 국가는 송시열에 이르러 완벽히 교조화되며, 조선 사회를 옥죄는 절대 질서가 돼버렸다.
송시열은 이미 기울어가는 조선의 질서를 붙들기 위해 성리학, 특히 주자학을 도그마로 만들었다. 이는 일종의 ‘사상적 방어벽’이었지만, 동시에 조선을 옥죄는 굴레였다.
정도전이 뿌린 씨앗은 자유롭게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송시열의 손에서 철창처럼 얽히는 나무가 되었다. 그래서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죽 쒀서 개 준 꼴이 된 것이다. 다만, 그 개라는 존재는 단순한 비하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에너지를 집어삼켜 보수의 방패로 바꿔 버린 거대한 역사적 아이러니였다.
죽 쒀서 개 주기
정도전은
새 아침을 열겠다는 마음으로
죽을 푹 고았건만
세월은 그 죽그릇을 빼앗아
송시열의 앞에 내밀었네
그는 죽을 삼켜
교조의 깃발로
조선을 옥죄었지
우리 사회에서 죽은 쉽게 얻어지는 음식이 아니라, 정성껏 곡식을 고아 만든 귀한 먹거리였다. 그런데 애써 만든 죽을 사람이 아니라 개에게 주는 상황은 곧 노력이 헛되이 돌아감을 가장 애절하게 표현한 장면이다.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노동과 인내를 강조하는 문화였다. 그러나 결과가 반드시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역사적, 사회적 경험이 “죽 쒀서 개 준다.”는 속담에 녹아든 것이다.
이 속담에는 단순한 헛수고를 넘어, 허망함과 분노, 그리고 씁쓸한 웃음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속담을 자주 인용하며, 개인의 삶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비극까지 설명하는 메타포로 확장했다.
안타까운 점은 “죽 쒀서 개 준다.”는 속담의 정서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비록 시대는 달라졌지만, 노력이 정당한 결실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험이 반복될 때마다, 이 속담은 다시 살아난다. 나는 상상해 본다. 죽을 얻어먹은 개가 죽을 쒀서 사람에게 주는 대동 세상을.
대동의 죽
솥 하나가
마을 한가운데 걸려 있네
누군가 불을 지피며
개가 옆에서 물을 긷고
아이들은 쌀을 씻는다
누군가 휘저으면
옆 사람은 땀을 닦아주고
죽은 고르게 끓어오른다
그릇은 차례로 돌고
어른도, 개도, 아이도
같은 뜨거움을 나눈다
모두가 함께 쑤고
모두가 함께 나누는 순간
대동의 꽃은
죽 한 그릇에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