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

일타강사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언젠가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조선 후기 시인 이양연의 시 ‘야설’이다. ‘야설’은 눈 덮인 들길을 걸어가면서 함부로 발자국을 내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함의는 훨씬 깊다.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후세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경계와 책임을 노래하는 시다. 눈 위 발자국은 곧 사라질 것 같지만, 그 길을 따라 누군가는 걸어오고, 더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길로 만들 수 있다. 이 시는 삶을 단절된 찰나가 아니라, 시간 위에 길을 놓는 행위로 보고 있다. 눈길을 함부로 걷지 말라는 것은, 곧 우리 삶의 궤적을 성찰하며 살아가라는 권유이다.

한강 작가는 시간의 연속성과 흔적의 힘을 고민했던 질문을 던진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 선조들의 발자취는 현재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우리를 구제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남긴 성취의 기록이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돕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어떤 발자국은 길잡이가 되고, 어떤 발자국은 피해야 할 길이 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들의 발자국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때 더욱 커진다.

한강이 던진 질문 속에는 회의와 절망의 색채도 함께 깔려 있다. 전쟁, 학살, 억압 같은 참혹한 과거를 겪고도 현재가 여전히 폭력과 불의로 가득하다면, 과거의 목소리는 정말 우리를 구했는가? 때로 과거는 도움보다는 상처와 족쇄를 물려주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강조한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내가 담근 순간의 물결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즉, 세상은 변하고, 나 역시 변하므로, 동일한 순간은 결코 반복될 수 없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고, 같은 장소라도 그때의 마음과 상황이 다르기에 같음은 허상이다.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선조들의 흔적이 현재와 미래를 잇는다는 ‘연속성’을 이야기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의 경구는 모든 순간이 단 한 번 뿐이라는 단절성을 상기시킨다.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

눈 덮인 들길 위에

오래전 누군가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그 발자국은

이미 사라진 이들의 체온과 숨결이 스민 길

지금 내가 발을 디딜 수 있는 유일한 길

나는 그 발자국 위에

발을 얹으며 묻는다

과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듯

내가 밟는 이 발자국

또한 어제와 같지 않다

눈은 조금 더 녹아 있고

바람은 다른 결로 불며

오늘의 나는 이미

어제의 내가 아니다

시간은 이렇게

우리를 이어주면서도

동시에 갈라놓는다

죽은 자는 발자국으로 말하고

산 자는 그 위에 발을 얹어 답하지만

그 답은 언제나 단 한 번만 흐른다

단 한 번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의 길이 되고

누군가의 구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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