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5
경기중학교에 입학한 후 어린왕자는 만화를 보면서 다져진 미술적 감각으로 미술부 활동을 했으나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미술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만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탓인지 정물화나 풍경화 그리기는 싫증을 느꼈다.
어린왕자는 경기중학교에 입학한 후, 만화를 보면서 다져진 미술적 감각으로 미술부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미술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무엇보다 그의 관심은 만화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사과나 병 같은 정물, 산과 나무 같은 풍경을 그리는 일엔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에게는 그보다 더 신비롭고 모험 가득한 세상이 있었으니까.
만화 속 세상 말이다.
어린왕자는 중학교 내내 만화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만화를 잘 그리는 아이로 소문이 퍼졌다.
이 별에선 여가라는 것이 그리 풍족하지 않아
아이들은 텔레비전도, 휴대전화도 없이 만화책을 탐독했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눈엔 만화는 늘 의심받고 질책받는 세계였다.
선생님들은 직접 만화방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했고,
어린이날이면 운동장 한쪽에서 아이들이 읽던 만화책을 모아 불태우는 화형식이 열리기도 했다. 어른들은 그걸 훈육이라고 불렀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슬픔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만화는, 그 별의 어둡고 무료한 오후를 밝히는 반짝이는 별빛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만화를 잘 그리는 아이는 금새 아이들의 주목을 받곤 했다.
어린왕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책상보다는 낙서를 좋아했고,
친구들과 떠드는 것보다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걸 더 좋아했다.
그렇게 그의 낙서는 점점 형태를 갖춘 만화가 되었고,
학교 신문을 만드는 신문반에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그림은 학교 신문에도 실리게 되었다.
공부보다는 만화에 빠져 있었는데도
그는 무난히 경기고등학교라는 또 하나의 명문 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어린왕자의 총명함에 놀랐다.
그의 그림 실력도, 머릿속 맑은 별들도 모두 부러웠다.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어느 날,
어린왕자의 친구 아버지가 신문사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어린왕자가 그곳에 견학을 갔고, 그림을 본 어른은 깜짝 놀라며
작은 일거리를 맡겨주셨다.
사실 그건 어린왕자의 실력이 놀라워서이기도 했지만,
아직 학생이라 인건비가 싸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왕자는 그런 걸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작업은 단순했다. 신문사에서 외국 만화 원고를 주면,
그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그대로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됐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베끼기라 부르겠지만,
어린왕자에겐 그것도 하나의 별을 옮기는 일이었다.
많은 장면을 따라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이 익었고,
손끝이 기억하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그는 이젠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눈은 기억하고, 그의 손은 스스로 선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