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먼나라 이웃나라 여행

Chapter.6

어린왕자는 처음엔 미국 만화 〈아이반호〉를 따라 그리는 일로 시작했다.


그림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선을 따라 그리는 트레이싱이었다.


〈톰 소여의 모험〉, 〈마르코 폴로〉 같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만화들도 그렇게 모사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일본 만화의 윤작인 〈수나〉, **〈사랑의 선물〉**을 접하게 되었고,


펜으로 직접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다시 펜터치를 하며 섬세하게 묘사하는


진짜 ‘그림’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의 그림은 모방을 넘어


창작 만화의 경지에 이르렀다.


별을 그리는 마음으로, 이제 어린왕자는 스스로 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처음 받은 아르바이트비는 3천 원이었다.


그는 그 돈으로 세 가지를 했다. 천 원은 영어사전을 사는 데 쓰고,


천 원은 극장에 가서 **〈벤허〉**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천 원은, 특별히 각별한 사이였던 바로 윗형에게 용돈하라며 주었다고 했다.


보통 막내는 형들에게 얻어먹기 바쁘다는 게 국룰인데, 어린왕자는 오히려 주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가 욕심이 많지 않고


자기만큼이나 타인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어린왕자는 살짝 뻐기듯 말하곤 했다.


“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아쉬운 소리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어요.


저, 기특하지 않아요? 하하.”


나는 그 말에 그가 너무 거만해질까 봐,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참 기특하구나’ 생각했다.


늘 용돈이 적다고 투덜대던 나였기에, 왠지 부끄러웠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별의 궤도엔,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보다 만화에 깊이 빠진 탓인지


어린왕자는 대학 입시에 실패했고, 그 충격에 깊은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 고등학교 480명 중에 360명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저는 떨어졌어요. 너무 슬퍼요.”


“아니야, 너도 다른 애들처럼 공부만 했더라면 분명 붙었을 거야. 힘내.”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마음 한켠으론 재수 없었다.


지방의 이름 없는 하류 사립대학에 겨우 들어간 내가


서울대 낙방생을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하고, 또 분했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1년간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나는 정말 뜻밖이었다.


그가 공대를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술 분야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미래가 불확실하니 못 간다 하더라도,


인문대나 상경계열에 지원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어린왕자는 한 번은 자신이 원래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머니를 치료해드리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우연히 본 환자의 피에 질겁한 뒤로


그 꿈은 접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산업화 중이에요!


공대가 최고 인기 학과예요.


요즘은 공대를 못 가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니까요.


그중에서도 건축공학과가 제일 멋지지 않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적성과는 상관없이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 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평소의 어린왕자답지 않았다.


역시나 나의 예감은 조용히 현실이 되었다.


어린왕자는 대학에서 미적분 수업을 듣다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수업을 빠지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그의 만화는 대학 시절에도 계속되었지만, 수업엔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아침이면 다른 친구들은 강의실로 향했지만


어린왕자는 기숙사방에 홀로 남아 배를 깔고 엎드려 만화를 그렸다.


그리고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을 즈음, 하루를 마친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그렇게 만화 원고료는 조용히 사라져 갔다.


6년간 그 별의 대학을 다녔지만 그는 결국 졸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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