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어 안달 난 내 마음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다.
어찌 됐든 관심을 받고 싶었다. 관심이 너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적은 아웃사이더였고, 친구들에게 관심을 구걸하기에도 뭣했다. 그래서 SNS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림. 어디까지나 ‘그나마’이다. 글을 쓰기엔 글재주가 없고, 신비로운 경험도 없었으며, 어그로를 끌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예쁜 그림을 그리려 노력했고, 온갖 해시태그를 주렁주렁 달아 SNS에 올렸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무도 내 그림을 봐주지 않았다. 신기하리만치 봐주지 않았다. 분명히 해시태그를 달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해시태그인데. 뭐가 잘못된 거지? 내 그림이 검색이 안 되는 건가? 조사한 결과 검색 결과에는 아무렇지 않게 내 그림이 떴다. 그렇다는 것은… 내 그림이 문제였다는 뜻.
하지만 이상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도 많은 관심을 받는데, 왜 나는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말인가. 내 그림이 그렇게 별로인가? 자존심이 사정없이 찌그러졌다.
아무리 새로고침을 해도, 매 시간마다 알림창을 확인해도 아무것도 뜨지 않을 때의 허무함과 비참함. 그 기분은 SNS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반응을 바라고 던진 미끼를 아무도 물지 않을 때 저만치 떨어지는 자존감.
그렇게 SNS 계정을 지운 것도 과거의 기억이다. 물론 실패만 겪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계정의 어떤 그림은 관심을 조금이나마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걸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관심이 적어서? 아니다. 내가 원한 것은 내 그림 따위를 향한 관심이 아니었다. ‘나’를 향한 관심이 고팠던 것이다.
내 그림을 올렸을 때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마치 나라는 사람 자체가 거절당한 듯 괴롭다. 그러면서도 관심을 받는다고 해서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 그림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것이 아니니까.
그 경험으로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실력’만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없구나. 내 실력이 나의 가치를 좌우하지 않는구나.
돈을 많이 벌어야, 능력이 좋아야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나 자신 그대로 가치 있다는 말은 무용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정말 그럼에도 우리는 나 자신 그대로 가치 있게 여겨줄 사람을 원한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더라도, 그림을 잘 그리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해 줄 사람.
그러나 어려운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그대로 사랑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실력이 없어도, 얼굴이 못생겨도, 말 그대로 아무 가치가 없어도.
무가치해 보이는 것을 사랑하라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존재만으로도 아름답다는 말은 허울 좋은 말일뿐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언제나 가장 사랑받고 싶은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싫어도 알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연습을 한다. 사랑받고 싶다고 보채는 내 마음속 그 아기를, 적어도 경멸하지 않는 연습 말이다. 당장 그 아기를 안아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를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