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괴물
새벽녘, 부산항에서 울리는 낮은 뱃고동 소리가 그의 악몽을 갈라놓았다. 박강호는 낡고 삐걱거리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입안에서는 밤새 마신 소주의 역한 맛이 맴돌았고, 머리는 깨질 듯이 울렸다. 5년 전 그날 이후, 그의 아침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후배 이정우가 빗속에서 절박하게 외치던 마지막 목소리, 그리고 차갑게 식어가던 그의 눈빛. 그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부산 중앙동, 낡은 상가 건물의 4층. 해가 저물면 창밖으로 보이는 부산항대교의 불빛만이 이 방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렸다. 비릿한 바다 내음과 매캐한 매연, 그리고 밤이 되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술집의 음식 냄새가 뒤섞여 들어왔다. 박강호는 한때 '미친개'라 불렸다. 타협 없는 집요함으로 미제 사건들을 해결하던 전설적인 형사. 그러나 5년 전, 이정우가 거대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블랙스완’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라진 뒤, 그의 영혼도 함께 죽었다.
이제 그의 사무실은 담배꽁초와 소주병, 5년 묵은 절망이 지배하는 유령의 공간이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웠던 사건 파일들은 이제 세월의 때가 낀 비석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전화기가 놓여 있었지만, 벨이 울려도 그는 받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절규와 애원을 외면하는 것이 지난 5년간 그가 터득한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그의 시선이 책상 한쪽에 엎어져 있는 낡은 액자로 향했다. 그가 액자를 바로 세우자, 사진 속 웃고 있는 이정우의 모습 위로 밤샘 잠복 끝에 마시던 싸구려 믹스 커피의 단맛, 범인을 체포한 뒤 함께 담배를 피우며 터뜨렸던 웃음소리가 파편처럼 스쳐 지나갔다. 강호는 그 빛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액자를 다시 엎어버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는 창가로 다가가 먼지 낀 유리에 손을 댔다.
그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덥수룩한 수염, 공허한 눈동자, 삶의 의지를 모두 잃어버린, 시간 속에 버려진 유령. 그것이 그의 현재였다. ‘블랙스완’은 단순한 사건명이 아니었다. 한 남자의 모든 것을 앗아간 몰락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