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울을 벗다

by 김하정

가을 장마인가 싶게 전국이 흐리고 때때로 비랍니다. 내일도 모레도 이어질 것 같습니다. 여름 장마 때 맘껏 쏟아붓지 못한 미련이 남은 듯, 늦게라도 약속한 양은 다 소진할 작정인가 봅니다. 뚝심 있어 좋긴 한데 눈치가 좀 없어서 회식자리에 끝까지 남아있는 부장님 같은 모습이긴 합니다. 가을걷이와 내년 농사를 위해 씨 뿌리는 언니의 마음을 알리 없고 외부 활동이 많은 남편의 불편함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걸 다 알아서 협상이라도 주선해야 될 입장인데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제된 느낌이 들어 마냥 좋습니다. 눈치 없기는 비할 바 없습니다.


말갛고 투명해진 잎사귀처럼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을 지켜보는 일이 즐겁습니다. 사람의 일처럼 저 속에 뭐가 있을까 의도하는 것을 알아내려고 실눈 뜨지 않아도 됩니다. 보이는 대로 보면 될 뿐 요령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게으른 사람에게는 눈높이가 딱 맞습니다. 부수적으로 덮여있는 것들이 한 겹 한 겹 벗겨질 때마다 고유의 색깔이 더욱 도두라져 보입니다. 초록은 초록 대로, 노랑, 연두, 주황은 각각의 빛깔대로 선명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파노라마처럼 가을이 더욱 깊어가겠구나 합니다.


정작 사람들은 서로를 타진하느라 자기 본연의 색깔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타인의 것은 나를 속이기 위한 위장 같고 내 것은 속지 않기 위한 보호본능 차원이라고 우겨보지만 실제로는 똑같이 씻겨 내려야 할 찌든 떼에 불과합니다. 그 한 꺼풀 벗겨지고 나면 '더' 와 '덜' 일뿐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 속에 감추고 있는 색깔이 무슨 색깔인지 구별하기 위해 서로를 경계한 채 들여다보느라고 시간 낭비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얼마큼 왜곡돼 있는지 과포장 되거나 너무 허술하지는 않는지 내 너울을 벗겨 내고 자신만의 빛깔을 찾아서 더욱 유연해지기로 합니다. 비 그치면 더욱 눈부실 모두의 색깔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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