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프라이는 양보 못해

by 김하정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내다 신혼 때 일이 생각나 웃습니다.

달걀 프라이 2개를 접시에 담아 내놓고 식탁 앞에 앉으려는 순간 한꺼번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뭐지? 벌써 다 먹은 거야? 그것도 두 개를 다? 이건 누가 봐도 나란히 한 개씩 먹자는 건데..

옹졸하게 보일까 봐 말은 못 하고 빈 접시만 바라보며 서운했던 마음이었죠.

먹고 안 먹고의 차이가 아니라 진짜 멋없다. 같이 먹자 기다려줄 줄 알았는데..

시시콜콜한 얘기라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반찬이 돼서 바라봐 줘도 모자랄 판에 이건 아니지 싶었던 거죠.

환상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던 것도 같고, 아무튼 서운함을 떠나 이번엔 각종 의혹들이 죽순처럼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 하나 없는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어? 아니면 원래 양이 두 개씩 먹는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단순하게 눈치가 없는 건지 - 그런 것이라면 더 큰 문제라 여겨졌습니다. 그 눈치 없음을 평생 감당해야 되는 거라면 얼마나 피곤할까 싶기도 했고, 아니면 달걀 그거 얼마나 한다고 또 하면 되지 막무가내 실리적인 사람인가? 그냥 여자와 남자의 차이일 뿐인건지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혼란스러웠습니다.

급기야는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걸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는데 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도 생각했으니 과장됐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달걀 프라이 하나에 이렇게나 많은 의혹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직 속속들이 알지 못했을 때는 걱정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한편으론 아주 사소해서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을 필요 이상 예민하게 굴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시간을 통해서만 알아갈 수밖에 없어서 그 순간을 설명할 길은 없었습니다.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설렘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두려움이기도 하는 거니까요.

많은 시간을 거쳐 그때의 의혹들이 해프닝처럼 기우가 됐지만 전부 다 삭감된 것만은 아니지요. 다만 가장 우려했던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게 다른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게 해줬다는 거지요. 또 한 가지 놓쳤던 것은 서운하다 말하면 됐던 것을 문제처럼 받아들여서 의혹을 키웠던 내 좁은 마음이었던 거죠.

우려했던 것들이 한쪽만의 것은 아니라서 서로에 의해서 수정되고 걸러지면서 돈독해지는 거니까요.

이제는 우회하지 않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합니다. 불필요하게 의혹 키우지 않고 거기에 맞게 같이 바뀌면 됐던 것이었지요.

지금은 아예 몇 개 먹을 건지 주문을 받습니다. 한 개씩 먹을 때는 프라이팬에 나란히 두 개 깨뜨려서 겹치는 부분도 정확히 구분해서 담습니다. 그때의 서운함을 상쇄하려는 건지 다른 건 몰라도 달걀 프라이만큼은 양보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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